한겨울 칼바람보다 더 살을 에이는 것은 희망퇴직의 칼바람이다. 말이 좋아 '희망'퇴직이지, 코오롱 구미공장 노동자들에겐 온통 '절망' 뿐이다. (주)코오롱은 인건비의 절반에 가까운 45%를 절감하겠다며 구미공장 기능직 사원 1,497명 가운데 280명을 감원하고, 410명은 분사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 강력히 추진중이다. 떠나는 자, 살아남은 자 모두 시린 한숨만 뱉을 뿐이다. 본지는 3차 희망퇴직 신청이 시작된 지난 13일부터 마감일 하루 전인 16일까지 (주)코오롱 구미공장에서 '한숨의 실상'을 취재했다. 1편 현장르뽀에 이어 19일자 2편에서는 노동조합과 회사의 대응책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편집자주>



정문에서 바라본 (주)코오롱 구미공장은 고요했다. 직원들의 움직임도 찾기 어렵다.

경영악화를 이유로 회사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해 노조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구미공장 이곳저곳은 한산한 모습이다. 다만 본관 앞에 굳건하게 자리를 틀고 있는 천막농성장만이 이 곳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줄 뿐이다. 공장장실이 있는 본관은 그러나 ‘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듯’ 무심하게 농성장을 바라본다. 천막농성은 그렇게 20일을 넘어서고 있다.

▲ 코오롱 구미공장 본관 앞 천막농성장 모습. ⓒ 매일노동뉴스

(주)코오롱 구미공장이 ‘한산’하고 ‘고요’하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답은 곧 해고될 위기에 놓인 직원들의 울먹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알 수 있다. 구미공장은 현재 ‘선택을 받은 자’와 ‘선택을 받지 못한 자’로 양분돼 있다. 전자는 ‘쫓겨나지 않고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이며 후자는 ‘회사와 작별을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뜻한다.

현재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칼바람’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과의 대화가 단절됐다. 살아남은 자들은 현재 회사에게 밉상으로 비춰지면 안된다. 회사는 살아남은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간의 대화를 싫어하는 눈치다. ‘노골적으로’ 같이 다니지 말 것을 권유하는 관리자들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관리자들에게 잘못 보일 경우 곧바로 해고 대상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스스로 겁을 먹으며 몸을 잔뜩 움츠린다.

생존을 한 사람들이라고 웃음꽃이 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료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오랜시간 동고동락을 한 동료들이 며칠 후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현실에 '죄송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자신 역시 먹고 살아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억지로 동료들과의 접촉을 피한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은 도대체 누구이기에 (주)코오롱 구미공장에서는 이 같은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노조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대다수 노조에 우호적인 사람들이다. 해고 대상자로 찍혀 ‘실직’이라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은 매일 쓴웃음을 지으며 노조를 찾는다.


모멸감 느끼며 공장 떠나는 노동자들

13일부터 시작된 3차 희망퇴직 기간동안 공장 안에는 “어떤 부서의 누가 사표를 작성했다더라”, “어떤 관리자가 아무개를 호출했다더라”, “나는 대상자에 포함됐다더라”, “공장 밖에서도 면담이 진행되고 있다더라”, “몇 명이 지금까지 사직서를 제출했다더라”, “우리 팀은 분사가 된다더라”와 같은 ‘신빙성 있는’ 소문만 나돌았다.

구미공장에서 만난 사원들은 대부분 “코오롱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가 지속적으로 자진사표 작성을 강요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90년대 초에 코오롱과 인연을 맺은 00생산부문 00생산팀 박아무개씨는 얼마 전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통보를 받았으며 이후 면담만 약 10차례 진행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코오롱에서 근무를 하고 싶다”고 누차 밝혔으나, 상사인 박아무개 과장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기 때문에 명퇴금을 받고 비정규직(분사)으로 일자리를 옮기는게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며 괴로워했다. 박씨는 끝까지 “열심히 하겠다.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으나 박 과장은 돈(퇴직위로금)도 싫고 비정규직 전환도 싫으면 (회사를) ‘나가라’고 말했다"며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정규직으로 일을 하다가 왜 내가 비정규직으로 근무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회사가 어려워서 공장 가동을 멈춘 것도 아닌데…. 부인도 무척 불안해하고 있다. 이제 겨우 빚을 갚고 돈을 모아서 착실하게 살려고 하는데 나가라고 하니 사실 막막하다.”

박씨는 그가 속한 조에서 노조활동에 ‘관심만 두고 있는’ 부류에 속한다.

“노조에 관심은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활동을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왜 내가 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8일 퇴사한 수지생산부문 중압팀 한병석씨. 한씨는 지난해 12월28일 노조가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투쟁조끼 착용, 조회거부 및 각종회의 참석 거부’ 등을 전체 조합원들에게 지침으로 전달하자 '반장'이라는 관리자로서의 직책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따랐다. 조합원이기 때문에 노조의 지침을 따른 것이다. 회사는 그러나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힌 후 결국 그를 보직해임시켰다. 문제는 이후부터다. 회사는 그에게 정상적인 업무를 시키지 않고 계단과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고 한다. 개별면담을 통해 사직서 제출도 강요했다. 회사로부터 적나라하게 모멸감을 느낀 그는 결국 코오롱과 인연을 끊었다. 반장이 된 지 채 1년도 안 된 한씨는 줄곧 노조에 우호적이었던 사람이었다.


노조 지침 따랐다고 기존 업무대신 계단과 화장실 청소

<희망퇴직 현황> (자료 : 노동부)
기능직 사원 현황희망퇴직 신청인원
합계1차2차
구미공장1,4973216315
김천공장41616314716
경산공장18632257
“주차위반을 많이 했고 자동차가 무쏘이기 때문에 회사는 ‘내가 사직서 작성의 대상자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사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정리해고를 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코오롱의 신규프로젝트를 위해 F1-1팀에서 지난해부터 지난 7일까지 실습교육을 받았던 박아무개(48)씨는 대뜸 이렇게 내뱉었다.

박씨에 따르면 그는 노조에서 강제적 구조조정을 반대하기 위해 주차질서 위반 투쟁을 전개할 당시 총 15차례 주차를 위반했다. 결국 상사인 최아무개 과장과 유아무개 부장은 교대로 ‘주차위반’과 ‘자동차가 무쏘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것 아니냐’며 퇴직을 강요했다고 한다.

“내가 스스로 판단을 해서 회사를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강요로는 절대 나갈 수 없었다. 결국 회사는 지난 10일부터 재택근무를 강요했다. 말이 재택근무지 대기를 하라는 것이다. 솔직히 불안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말도 안되는 것들로 퇴직을 강요하니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진다.”

박씨의 가족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가장인 그가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족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박씨 또한 노조활동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니다. 그는 회사가 진행 중인 희망퇴직과 면담이 결국 퇴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며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지난 88년 입사한 이동환(37)씨는 최근 일주일 사이에 살이 5kg이나 빠졌다. 2000년 2월 부서 관리자로 선임된 그는 지난 14일 관리자로서의 해임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이를 정리해고 대상자로 통보받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언제 관리자로 선임시켜달라고 했나요? 선임했다가, 해고했다가, 이게 뭡니까?”

회사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움직임에 따른 여파로 가정 파탄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00생산부문 00팀 김아무개씨의 부인 이아무개씨는 최근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수술날짜를 받아두고 있던 이씨는 최근 (주)코오롱의 한 관리자로부터 “남편이 사표를 쓸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씨는 결국 병세가 악화됐다. 남편이 단 한 번도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발생하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김씨가 더 분노하는 이유는 본인이 회사쪽 관리자와 면담을 하고 있던 그 시간에 또 다른 관리자가 부인에게 이 같은 전화를 했다는 점이다.


(주)코오롱, '사회적 물의' 발생해도 인원감축 강행

(주)코오롱은 지난 12일 고용안정특별위원회에서 경영난 타개를 이유로 인건비 45% 절감목표를 제시하면서 분사(410명) 및 감원(280명), 추가 노사협의를 통한 10% 절감 등의 계획을 밝혔다. 인원감축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하더라도 남는 인원들에 대한 임금삭감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2차 희망퇴직을 접수받은 결과 모두 321명이 신청을 했다.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370여명이 더 정리돼야 할 상황이다.

(주)코오롱 구미공장은 지난 13일 조희정 공장장 명의로 회사 곳곳에 공문을 붙였다. 회사는 현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3차 조기퇴직우대제(희망퇴직)는 강제적 인원조정의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확실시 되는 사원들을 위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또 “회사의 이 같은 노력이 무산될 때 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법과 원칙에 의한 해결”이라고 덧붙여 희망퇴직신청자 수가 회사 예상보다 적을 경우 '정리해고'를 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구미공장 최지철 노경협력팀장은 “(강제적 인원조정) 대상자 기준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양해를 구했다.

지난해 파업을 끝내면서 회사가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노사합의를 했기 때문에 이를 믿었던 조합원들. 이들은 최근 회사의 움직임을 ‘노조 죽이기’로 굳게 믿고 있다. 특히 ‘강제적 인원조정의 대상자’는 ‘노조에 우호적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서 그동안 퇴직금을 중도정산한 사람들이 많아 대부분 퇴직금을 많이 받지 못한다. 또 회사의 무이자 대출을 통해 주택자금 등을 받은 사람들은 다 갚고 나가야 하니까 실제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위로금 2천만~3천만원을 갖고 도대체 나가서 무엇을 하라는 말이냐.”

그러나 회사는 ‘막다른 골목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사회적 물의’가 발생하더라도 인력 구조조정은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코오롱 조합원들은 이미 웃음을 상실했다. 옆의 동료들이 하나둘 이탈하면서 만사에 의욕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절망'으로 소일하고 있다.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
지역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 이구동성
구미지역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 역시 한결같이 (주)코오롱이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13일. 구미시 공단동 시민복지회관 1층에 자리 잡은 민주노총 구미지역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배태선 사무국장은 코오롱의 인력 구조조정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배 국장은 “회사는 회유와 협박을 모두 동원해 정리해고를 기정사실화하는 등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강제적 인원정리를 실시한다”며 “실제 회사는 강제퇴직자 숫자가 많을수록 좋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일을 진행하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수가 지원해 탄력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주)코오롱이 지난해 8월 파업 당시 약속했던 고용보장은 노사간의 합의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와의 약속이라며 정부관계기관, 상급단체, 시민사회의 참여와 중재 아래 합의된 내용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일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는 게 이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생각이다.


김영민 구미 YMCA 사무총장은 “노동조합이 회사의 강제적 인원정리 중단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라며 “정말 경영상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면 힘의 논리가 아니라 노사간 합의정신을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양쪽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구미공장의 생존’을 앞세워 회사의 희망퇴직 접수에 대해 찬성 의견을 밝힌 시민들도 없는 건 아니다.


택시운전을 하는 김아무개씨는 현 상황을 ‘일종의 가지치기’로 비유하면서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되는 조합원들의 안타까운 마음도 이해하지만, 일단 회사가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자영업자라는 김아무개(구미시 송정동)씨는 “코오롱 구미공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설립한 이후 이 지역 경제발전을 위해 공헌한 바가 크며 이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며 “회사가 곧 문을 닫을 위기인데도 노동조합이 자꾸 딴지를 거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구미시민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시민들은 “강제적 인원정리는 안된다”, “코오롱 구미공장의 인력 구조조정의 악순환은 멈춰야 한다”, “경영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코오롱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기자가 구미에 도착한 첫날인 지난 13일 택시 운전사인 박아무개씨는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인력 구조조정 움직임이 있는 것 같던데…”라고 말을 꺼내자 곧바로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이 아니냐”고 답했다. 박씨는 “지난해 파업 당시에는 코오롱노조를 솔직히 곱지 않는 시선으로 봤다”며 “하지만 지금은 회사의 행동이 도가 지나친 것이라는 사실을 시민들 대다수가 모두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사는 절대 조합원들을 일방적으로 내쫓아서는 안 된다"며 "회사가 정말 어려운 처지라면 회사의 경영이 나아질 때까지 전 직원들이 임금을 받지 않고 일을 하면서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대안도 내놓았다.


구미공장 인근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조아무개씨는 “식당을 찾는 사람들마다 코오롱 공장장이 나쁘다고 한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절반 이상의 사람들을 해고한다고 하던데 코오롱 공장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들은 직원들의 애사심 때문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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