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책을 받은 사람들. 신용불량의 늪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이들의 삶은 어떨까. 법원에서 날아온 면책서류를 바라보며 ‘제2의 인생’ ‘새로운 출발’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일 뿐. 그들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빚을 지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힘겨운 냉엄한 사회 아니었던가.
 
파산과 면책은 채무자가 법원에 신청해 채무를 면제받는 제도. 과도한 채무로 지급불능 상태일 때 파산을 하게 된다. 그러나 파산을 했더라도 신원증명 기록, 법인임원 제한, 의사·변호사 등 각종 자격 박탈 등 신분상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채무자는 파산 뒤 면책신청을 통해 최종적으로 잃었던 권리를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면책을 받는다 해도 ‘새로운 삶’이 곧바로 열리는 건 아니다. 취업을 하려 해도 신용정보 조회에서 ‘파산·면책’이 드러나 곧바로 회사에서 쫓겨나야만 하는 신세다. 결국 막노동, 식당, 경비 등 닥치는대로 해보지만 이마저 일거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수입이 낮아, 장기적인 인생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그나마 적은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호떡, 붕어빵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다.
 
파산·면책을 받았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채권추심’의 고통을 간신히 덜었을 뿐. 신용불량의 늪에 다시 빠지지 않으려는 그들의 ‘재출발’엔 곳곳에 암초 투성이었다.
 
“사람이 무섭다. 숨도 못쉬겠다”
 
11일 오후 만난, 신림동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부미(가명, 46)씨. 지난해 11월, 채권자들과의 1년여 씨름 끝에 ‘면책’을 받았다. ‘호프집 운영’ ‘옷 제작’ 등의 일을 했던 김씨는 7년 전 6천여만원의 사기를 당해, 매달 2백여만원씩 이자를 갚느라 허덕였다. 돈을 버는 족족 갚아 나갔지만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었다. 도저히 빚 갚는 일이 감당이 안되자, 급기야 충격으로 눈이 안보일 정도였고, 신경쇠약, 우울증 등에 장기간 시달렸다.
 
김 씨는 지난해 초 거의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를 찾았다. 초등학생인 딸이 다니던 성당 공부방 선생님의 소개였다. “거의 실신지경의 상태로 찾아가 울고불고 난리를 쳤죠. 거의 죽기 일보직전에 파산제도를 알게 된 거예요.”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 그. 파산면책 전후의 후유증으로 2년여 동안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빚(독촉)에 시달리다 보니까 깜짝깜짝 잘 놀래고, 불면증에 시달려요. 지하철 타러 갔다가도 사람들이 몰려 있으면 무서워 가질 못해요. 숨도 잘 못 쉬겠더라고요.”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인 딸을 홀로 키우는 처지에서 어떻게 생계를 이어나가는지 궁금했다. “최근 ‘영세민’ 신청을 해서 60여만원을 받아요. 그걸로 생활하죠. 그런데 임대료, 관리비 30여만원 내기도 빠듯해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들이 대부분이 그렇듯 김씨의 삶도 힘겨워 보였다. 당장 수입이 없다보니 계속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 기자와 만나기 직전에도 김씨는 같은 동네 친구한테서 200만원을 빌리던 참이었다.
 

“남한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남한테 도움 받는다는 게 못할 짓이죠. 자존심도 상하고…. 면책 이후에도 ‘돈 갚아라’는 전화가 가끔 오죠. 돈 갚을 형편이 되면 갚을 생각이에요.” 그러나 김씨는 당장 임대료, 관리비도 못내고 있는 처지였다.
 
“임대료, 관리비 1년 미납했다고 집을 비우래요. 결국 300여만원을 보증금에서 제했죠. 하루는 딸 아이가 목욕탕 물을 가득 받아 놨더라구요. 관리실에서 돈 안냈다고 전기, 수도 끊는다고 해서 그렇게 했던 거였어요.” 김씨는 이내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초등학생한테까지 그런 얘기할 수 있어요. 관리실 가서 엄청 따졌죠." 김씨는 이후 또 임대료, 관리비 등 300여만원의 연체금이 생겨 이달 20일까지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지금은 몸이 안 따라줘서 일할 엄두가 안나요. 불경기라 꾸준한 일감도 없고요. 그러나 어떻게든 몸과 마음을 추스려서 빨리 일을 시작해야죠. 한 푼이라도 벌어야 먹고살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다하려는 그.
 
“아이들 때문에 살아요. 내가 아프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하든 꾸려나가야 되는 거죠.” 뒤돌아 시장 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웅크린 어깨가 한없이 슬퍼 보였다.

“그때 은행에서 1년만 더 기다려줬어도…”
 
좀더 많은 면책자들을 만나기 위해 ‘파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파사모)에 부탁을 했으나 다들 만나길 꺼려했다. 몇 차례 부탁 끝에 카페의 개설자이자 현재 고문으로 있는 ‘굿뉴스’라는 아이디를 쓰는 50대 남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3월 면책을 받았고, 현재 광고물 등을 제작하는 재택 인쇄업을 하고 있다.
 
“카페에 200~300여명의 면책받은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파산 면책 받으면 뭐 하겠어요. 독촉을 덜 받는다는 것뿐이지, 수입이 안 생기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면책 이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호떡이고, 노점이고 하다가 걷어치운 사람들 참 많아요. 무엇을 해도 안되고, 이것저것 일하다가 접고, 막막한 사람들이 많죠. 집세를 못내 안절부절이에요. 한달 방값 도와주면 뭐하겠어요. 한달 후에는 또 똑같은 상황인 걸.”
 
“저야 얘들이 다 커서 큰 문제없다지만, 아이들 한참 크는 집들은 참 어려워요.”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점포세 못내는 집들 수두룩할걸요. 그 사람들 피가 마르죠. 위기에 몰려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 심정을 알 듯 그의 눈가에는 이내 눈물이 고였다.
 
면책 이후 생활하는 데 어려운 점을 물었다. “면책자들만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어렵잖아요. 면책받은 사람들은 주위의 신망을 잃다보니 인간관계가 깨져 있고, 은행에서도 대출을 해주지 않으니, 돈도 별로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지요.” 그래도 사업하려면 돈이 필요할텐데. “넌덜머리가 나서도 이제 돈 빌릴 생각 안하게 되죠.”
 
정부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면책 받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죠. 더 이상 기대도 안해요.” 그는 면책자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면책 받은 분들을 중심으로 자활 방법을 찾으려 하는 데 잘 안돼요. 밑천 없이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재기할 수 있도록 자활공동체를 꾸리려고요. ‘사회연대은행’과의 조인트 등도 생각할 수 있죠.”
 
사회연대은행은 저소득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비영리 자활 지원기관. 2003년초 정식 발족해, 빈곤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무보증 소액대출’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내 코가 석자라 자꾸 망설이게 되요. 내 처지가 젊은이들과는 또 틀려요. 시간적으로 쫓기죠. 노후생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왕성한 의욕을 보이는 ‘굿뉴스’님이지만 면책이후 밑바닥부터 재출발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면책받은 분들이 연락도 잘 안되고, 모이질 않아요. 다들 제각각 먹고 살아갈 궁리를 하는 거죠.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도 힘이 솟는데 면책 이후 전화도 안 할 때는 아쉽고, 서글퍼지고,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지 회의적이기도 해요.”
 
한때 서울 압구정동에서 ‘맥주 바’를 운영하는 등 시쳇말로 ‘잘나갔던’ 그. IMF 이후 은행들이 앞다퉈 대출금을 회수하면서 그는 공중에 붕 뜬 신세가 되어 버렸다.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카드가맹점 등록도 거부돼 맥주바는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은행이 1년만 더 기다려줬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의 지하셋방에서 살고 있는 그는 아픈 아내에게 미안하고, 자식들 앞에선 면목이 서질 않는 가장이다. 면책받은 뒤 주택청약저축을 붓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돈을 모을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옛날 잘 나갈 때 생각하면 뭐 하겠어요. 부질없는 것이고, 스스로 정신 챙기는 수밖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무거워 보였다.
 

 
파산면책 ‘대중화’ 시대, 불이익 폐지돼야
 
12일 대법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파산 신청건수는 1만4,921건으로 2003년 3,856건에 견줘 3.9배나 증가했다. 신청건수는 2000년 329건, 2002년 1,335건에서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파산선고를 받아 면책을 받은 건수도 4,100건에 이르렀다. 2003년 974건, 2002년 245건, 2001년 80건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 ‘면책허가율’은 95.8%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파산의 대중화인 셈이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와 함께 명동에서 길거리 신용상담 등의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오명근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해 파산신청 건수가 1만 건이 넘었다는 것은 정부정책의 실패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죠. 이제 정부와 은행들이 파산면책자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고 봅니다.” 오 변호사는 파산이 대중화되면서 정부와 은행권의 대책이 조만간 나오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올해가 시발점이 되어서 파산면책자들을 위한 금융서비스, 자활 프로그램 등이 나올 것으로 기대해요. 그리고 파산면책받은 분들 가운데 ‘파산면책자 조합’이나 ‘금융조합’ 형태도 고려해 볼 수 있고요.”
 
오 변호사는 또 면책자들이 의기소침해 할 수 있는 부분과 관련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아직까지 신불자나 면책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좋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취업 불이익도 있고요. 어쩔 수 없는 측면이고, ‘누구나 한번씩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고 훌훌 털어 버리는 자세가 필요해요.”
 
한편, 민주노동당은 ‘개인파산제’의 활성화 요구와 함께 파산과 면책 신청의 일원화를 골자로 한 ‘파산법 개정안’을 마련중이다. 이와 함께 파산면책 과정에서 ‘신분상 제약’ 폐지 등 200여 가지의 관련 법률을 정리해 ‘파산선고 등으로 인한 불이익 폐지에 관한 특별법’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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