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간격으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는 철조망. 철사를 꼬아 만든 이 사악한 도구는 근·현대사에서 영토 확장의 탐욕과 식민지 침탈, 지역 또는 국가 간 갈등, 대량학살의 어두운 이미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물건이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긴 철조망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휴전선뿐 아니라 전 국토를 휘감고 있는 이 기괴한 물건은 분단의 현실을 처절하게 웅변하는 상징물이다.
   
철조망을 통해 근대사의 스산한 풍경을 돌이켜본 '악마의 끈'(앨런 크렐 지음. 강미경 옮김. 사계절)이 나왔다.
   
호주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예술대학 교수인 저자는 문학과 회화, 사진, 만화, 영화, 패션 등 다양한 예술장르에 등장하는 철조망의 의미를 분석하면서 농가에서 쓰이던 이 간단한 발명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근대 세계의 구획과 통제의 상징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1850년 프랑스에서 가축관리를 위해 발명된 철조망은 미국에서 서부 개척과 철도 건설 붐을 타고 산업으로서 급격하게 성장했다.
   
철조망은 가축과 목초지를 정확하게 구분해주는 개척시대의 꽃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 나갔다. 하지만 대초원을 구획하고 통제하는 철조망은 인디언들에게는 전통적인 사냥터를 빼앗아 가는 '악마의 끈'일 뿐이었다.
   
통제와 억압장치인 철조망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그 잔혹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영·미 연합군과 독일의 최대 격전 중 하나인 솜 전투에서 영국군은 돌격을 개시한 첫날 독일이 쳐놓은 철조망에 갇혀 무려 6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몸에 닿기만 해도 치명적인 전류가 흐르는 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전기 철조망은 유대인 학살과 동의어가 됐다. 철조망은 또한 정치적 상징도구이기도 하다.
   
예수의 가시 면류관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고난을 나타낸다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의 철조망 면류관은 넬슨 만델라가 아파르트헤이트 아래의 흑인해방운동을 벌이면서 겪은 기나긴 투옥과 연금상태를 의미한다. 304쪽. 1만3천800원.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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