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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남의 탓을 하지 말라
  •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 승인 2005.01.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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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만큼 ‘망하게 하기에는 너무 크다’는 이른바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달러 가치 하락의 국면에서 무역적자는 ‘한 나라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지출한 결과’라는 상식이 적어도 미국에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맨 먼저 튀어나오는 물음은 이런 상식이 아니라 ‘달러 가치 하락의 부담을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얼마 전 중국이 미국을 향해 쓴 소리를 내뱉었을 때 많은 한국인들은 통쾌함을 느꼈다. 리뤄구 중국인민은행 부총재는 지난해 11월22일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남을 탓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근거는 세 가지였다.
하나는, 중국의 저축률은 40% 이상인 반면, 미국은 2% 미만이다 → 그만큼 자신들이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지출하고 저축은 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두 번째는, 미국 정부가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임금과 생산성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곧, 미국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섬유산업이나 농업처럼 생산성이 낮은 저부가가치 부문에 지나치게 많이 고용돼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가 필요한 상품의 수출을 막고 있다는 논리다. 미국이 막대한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데는 군수품이나 하이텍 제품이 중국 등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것을 막고 있는 게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인건비가 미국 인건비의 3%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위안화 평가절상이 미국의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미국은 우주항공과 같은 분야에 집중해 이를 우리에게 팔면 된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중국은 2004년 40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미국에 대해서는 약 1,20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올리는 것은 이런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미국의 ‘전략적 무역’ 정책으로 인한 보호주의에 상당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런 주장에 대해 유럽연합(EU)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을까. 한 마디로 ‘오락가락’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이 2003년 7월과 10월 영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다. 이 주간지 2003년 7월12~18일치는 '인위적으로 값싼 아시아 통화들'(Asia's artificially cheap currencies)이란 제목이 달린 기사에서 “달러 가치 하락의 부담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게 오늘날의 불평”이라며 달러 가치 하락의 부담이 전적으로 유로화에만 떠넘겨지고 있다는 데 대해 심각한 불만을 나타냈다.

또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축소할 필요가 있는 시기에, 아시아 통화의 경직성이 세계경제의 긴장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시아 각국의 외환보유고가 미국 국·공채 매입을 통해 미국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지적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곁가지일 뿐이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 10월25~31일치는 태도를 바꾼다. ‘서방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중국을 비난하지 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상당수의 부자 나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중국이 비난받고 있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정치인들은 비난받아야 할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데, 오늘날 부자 세계에서 선택한 희생양(scapegoat)는 중국"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중국이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중국이 1,200억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총 흑자는 소규모이고 일부 나라들에 대해서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많은 경제학자들이 2004년에는 중국이 적자로 돌아설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에 대한 불만에도, 중국은 한국이 겪었던 것과 같은 ‘수출 주도적 성장의 덫’에 걸려 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3%에 이르고, 중국의 총 상품 수출(약 4,400억달러)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7%나 된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일본에게도 미국이라는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노골적으로 재무부 채권금리 올려줄 테니 계속 외환보유고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해 달라는 이들 국가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 동북아 3국은 반발하면서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무게 중심을 중국 쪽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12월11일 한국은행과 일본은행, 중국인민은행 등 아시아 11개국 중앙은행과 외환당국은 타이 바트화나 중국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표시 채권에 투자할 기금을 공동으로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20억달러 정도인 기금 규모를 과감히 확대해 역내 채권시장 기반을 신속히 늘리는 것이 무게 중심을 옮기는 모습일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국제표준과 거리를 두는 역내 신용평가 및 수익성 기준을 마련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cjsang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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