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남은 시간을 깔끔하게 마무리 하고 다가오는 2005년을 힘차게 맞이하고 싶어 단식을 결심했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자신의 별명처럼 ‘지둘려’(기다려)만 연발하지 말고, 이제라도 국보법 폐지안을 직권상정 하라.”

29일 오전 여의도 천막농성장 앞에서 열린 ‘국보법 연내 완전 폐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단식농성돌입 기자회견’에 참가한 최문성미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직국장의 말이다. 1천여명의 시민, 학생, 활동가들이 2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의도 천막농성장에 이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100여명의 식구가 더 늘어났다. 


국보법, 존재해선 안 될 ‘절대반지’

환경, 여성, 인권, 평화, 복지, 경제, 권력감시 등 그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사회의 개혁과제를 붙들고 씨름해온 18개 시민사회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29일과 30일 각 단체의 모든 업무를 모두 중단하고 국회 앞에 모여들었다. ‘최대한의 모든 역량을 끌어 모아 반드시 국보법 연내폐지를 이뤄내야 한다’는 절박함과 ‘국보법이 그간 시민사회단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아 왔다’는 공감대가 활동가들을 국회 앞으로 끌어 모은 것이다.

특히 대북지원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에게 있어 국보법 폐지는 누구보다도 절박한 바람이다. 최현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대외협력팀장은 “우리처럼 북한사람을 직접 접촉해야 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국보법에 기소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주장하며 “국가의 보물을 지키는 법은 ‘문화재보호법’이지 ‘국보법’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총장은 국보법을 영화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에 비유하기도 했다. 지 총장은 “국보법 폐지를 위해 농성하는 우리는 ‘절대반지 국보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프로도’와 같은 존재”라며 “영화 속 ‘골룸’처럼 고민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우왕좌왕하는 자세에서 속히 벗어나 당론으로 채택한 국보법 폐지안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했다. 


“엄마! 빨리 철폐하고 와”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24일째 국회 앞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단식농성 단원들이 말하는 ‘국보법 폐지’ 바람은 더욱 절절하다. 하는 일도 사는 곳도 모두 다른 이들이지만 “남은 이틀 열심히 투쟁해 웃으며 돌아가겠다”는 마음만은 한결같다.

7일째 단식에 결합하고 있다는 신인숙씨는 5살배기 딸아이를 야간탁아소에 맡기고 울산에서 상경한 경우다. 신씨는 “전화로나마 ‘엄마, 빨리 철폐하고 돌아와’라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절로 난다”며 “아이들이 국보법 없는 새세상에서 활짝 웃는 그날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모님께 끝내 단식한다는 얘기를 못하고 농성에 결합했다”는 김희영씨도 “국보법 폐지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만큼은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씨는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실천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행동하고 있다”며 “부모님, 그리고 함께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밤 될 것”

평균 1천여명, 많을 때는 하루 3천여명에 달하는 단식농성단과, 전국 3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동참하고 있는 ‘국보법폐지를위한국민연대’(국민연대)는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29일과 30일 국회 앞에서 밤샘 촛불집회를 열어 17대 국회와 김원기 국회의장에 마지막 압박을 가한다는 계획이다.

농성단원들은 “우리가 함께 밝히는 촛불은 여의도를 뜨겁게 달구고 민주화 운동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밤을 빛낼 것”이라며 “개혁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민여러분이 ‘국민의 촛불’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양일간 열리는 밤샘 집회는 29일 오후 7시 국회 앞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다음날 오후 7시 국회 본회의 종결시각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한편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참한 상황에서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시도하다 한나라당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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