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단식농성 체험'은 그야말로 자발적인 것이었다. 23일 오후 후배 기자와 함께 “올해는 정말 단식농성자들이 많았다”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성탄절을 맞아 단식농성 체험기를 쓰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현재도 정읍환경미화원 해고자복직투쟁위 김익선 의장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중이고, 공무원노조 간부들이 징계철회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수많은 단식농성장이 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촉구 단식농성에 참여하기로 했다. 50여년 동안 살아있는 악법중의 악법, 국가보안법을 끝장내겠다고 매일 1천여명이 사상초유의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데, 그냥 취재만 하고 있기에는 아쉬움과 미안함마저 든다.

더구나 지난 2001년 겨울 인권활동가들이 명동성당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처절한 단식농성을 벌일 때 ‘기자’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했다는 죄책감이 남아있던 터였다.
 



국가보안법 대응투쟁 논란에 '예민'

기자가 단식농성에 참가한 24일은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의 집중 촛불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참가자들이 적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끝장 단식단(무기한 농성단)’이 모이는 서대문 농협중앙회 앞에 도착했다.

오후 6시30분, 매서운 추위에 농성자들은 눈만 빼곰히 내놓은 상태로 천천히 촛불집회가 예정된 광화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길게는 19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이들은 초췌해 보였으나 단식을 오래한 사람일수록 눈에서 빛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에 비해 나이든 농성자들의 경우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

행인들의 손에는 저마다 ‘크리스마스 케익’이 들려 있다. 왠지 내가 농성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농성단의 차량에서는 “시민여러분, 저희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국민 단식농성단입니다. 친일파가 만들고 친일 후손이 폐지에 반대하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합니다”는 절절한 방송멘트가 계속 흘러나왔다.

서대문을 비롯해 서울역에서, 인사동에서, 명동에서부터 행진해온 1천5백여명은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모여 촛불집회를 벌였다. 효순, 미선이 문제해결을 위해 광화문에 수많은 촛불이 켜졌던 2002년 성탄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두터운 파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 가량 지나자 춥고, 저녁식사 시간이다 보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전날 회사 송년회에서 과음을 해서인지 공복이 되자 속도 쓰렸다. 순간 ‘괜히 한다고 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때 잘 알고 지내는 민주노동당 활동가가 지나갔다. 단식농성 체험기를 쓰기로 했다고 자랑삼아 얘기했다. 격려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반응은 “요즘 매일노동뉴스에 기사 없나보죠”였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최근 벌어진 ‘국가보안법 대응 논란’을 반영하는 말이었다. 민주노총도 처음으로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행동으로 나서면서 일각에서 ‘국가보안법 투쟁’에 너무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처럼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시니컬한 반응을 받지 않도록 기사를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집회 말미에 “여의도 농성장을 철수한다는 계고장이 날아왔다”는 소식을 전한 것도 걱정스럽다. ‘체험기’는 커녕 '속보'를 써야 되는 건 아닌지….

날씨는 춥고 배는 고프지만…

9시쯤 촛불집회가 끝났지만 차가 밀려 여의도공원 농성장에는 10시에야 도착했다. 일찍 온 민주노총 농성자들은 조별토론을 하고 있었다. 주로 29~30일 예정된 집중투쟁에 조합원들을 어떻게 조직할지가 논의됐다.

성탄절이어서 하루단식에 참여하는 농성자들이 반 정도 줄었다. 보통 50~60명이 농성장에 머물렀는데 오늘은 30명 정도 된다. 민주노총 끝장단식조(조장 김용욱 전 통일선봉대장)은 처음 26명에서 현재 13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그동안 민주노총에서만 참여한 사람의 총인원이 800명을 넘어섰다.

삼삼오오 쉬고 있는 농성자들에게 최근 벌어진 ‘민주노동당 국가보안법 논란’에 대해 물었다. 당시 조선일보에 기사가 나가면서 농성장 분위기는 격앙됐다고 한다.

9일째 단식중이라는 김재하 운수공투본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시기집중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논란은 ‘초를 치는 일’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를 순 있지만 말할 때를 가려야 한다. 솔직히 민생이 뭔지 토론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이런 때 내부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보안법은 단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수구보수세력과의 한판 싸움이다. 민생, 노동문제 등도 모두 깊이 따져보면 우리 사회 권력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국가보안법 투쟁의 의미에 대해 더 설명했다. “정형근 말이 맞다. 국가보안법 폐지되면 우리 사회 난리 난다. 수구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투쟁은 의식투쟁이다.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폐지 못시키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래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두 번째로 하루단식에 참여한다는 김현미 금속노조 서울지부장은 “국가보안법과 민생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현 시점에서 국가보안법 투쟁에 집중하는 것은 맞다. 다만 국가보안법 투쟁을 좀 더 대중적으로 펼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짧게는 열흘에서 길게는 스무날씩 단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날 거리행진을 한 탓에 피곤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밤 10시가 좀 넘자 농성자들은 하나 둘 잠에 빠져들었다. 원래 늦게 잠드는 기자는 책을 펴들었다. 천막 밖은 너무 추웠다. 밤 11시가 다 됐는데도 방송국 카메라기자가 촬영을 하러 왔다. ‘밤늦게 홀로 책읽는 농성자’를 찍기 위해 기자 옆으로 오는 방송카메라. “찍지 마세요. 전 취재온 기자예요.” 하루 농성으로 방송에 나온다면 민망할 것 같았다.

백열등 아래서 책을 읽으니 곧 눈이 침침해진다. 농성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따뜻했지만, 1천여명이 묵는 넓은 농성장을 난방하기 위해 켜 놓은 산업용 온풍기의 소리가 엄청 시끄러웠다. 석유냄새도 심했다. 새벽 3시부터 30분마다 잠을 깨다 아침 7시쯤에야 일어났다.

25일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누군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국가보안법 폐지 주세요”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을 봤는데, 아직 그런 소식은 없는 듯 하다. 오늘은 출근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아침선전전이 없단다. 대신 모든 농성자들이 모여 박세길 농성단 집행위원장으로부터 정세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고비인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는 농성단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정치권에서 최대현안이 된 것은 농성 덕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기간은 별로 없습니다. 최대 결의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은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지역구인 안산시민들을 상대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호소할 계획입니다.”

드디어 오후 1시. 민주노총 하루단식단의 교대식이다. 전날 농성자들과 이날 참가할 농성자들이 함께 모여 발언과 구호를 외치는 자리. 기자도 떠날 시간이다.

한 농성자가 “송 기자는 오늘 점심 뭐 먹을거냐?”고 묻는다. 멋쩍은 웃음만 흘릴 수밖에. 단식 끝나면 밥 한번 산다는 약속을 한 뒤, 안산으로 향하는 농성자들을 뒤로 하고 여의도를 떠났다.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단식농성 체험기’ 계획에 대해 “취재할 생각 하지 말고 체험을 잘하라”고 당부했는데, 강 수석부위원장 말대로 된 것 같다. 배고픈 것을 못 참는 기자는 적극적으로 취재할 생각은 안하고 온전히 ‘체험’만 한 것이다.

농성장을 떠나는 순간, 1천여명의 단식농성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열린우리당 의원총회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했다.

성탄절 오후 3시쯤, 서대문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 돌아오니 기자의 개인홈페이지에 한 지인의 성탄인사가 남겨져 있다. “저들에게 찾아가시어 / 어둠과 저주의 담을 허무시고 / 생명과 소망과 평화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김선옥, ‘성탄절에 오신 예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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