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현 감독(전 KBS '인간극장 PD)이 지하철에서 맨발로 걸어다니는 특이한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1995년 7월이었다.
   
등이 구부정한 할아버지는 이해하기 힘든 문구들이 가득 적힌 종이를 몸에 칭칭 감고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라고 외치며 목발에 의지한 채 지하철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공공장소에서 흔히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여느 광신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점점 이 할아버지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할아버지의 이름은 최춘선이었고, 무려 30년이 넘게 엄동설한에도 신발을 마다하고 지하철에서 전도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김 감독이 7년 동안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이 '맨발의 노인'을 관찰한 다큐멘터리 '맨발 천사 최춘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규장 펴냄)가 나왔다. 책장을 넘길수록 노인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진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 운명처럼 노인과 다시 마주친 저자가 "왜 신을 안 신고 다니시느냐"고 묻자 노인의 대답은 한결같다. "난 신을 수 없어. 통일이 오기 전엔 절대 안 신어."
   
노인은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알 수 없는 말들을 뱉어낸다. "선생님은 그 웃는 얼굴 웃는 안광, 김구 주석 꼭 닮았어, 축하합니다" "미스 코리아 유관순! 미스터 코리아 안중근! 화이 투 코리아(Why two Korea)."
   
이 노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웃기도 하고, 미쳤다며 혀를 차기도 하고, 애써 무시하기도 했다. 저자는 나중에야 '화이 투 코리아'라는 노인의 말에 "모든 사람이 유관순이나 안중근 같다면 왜 남북한이 갈라져 있겠느냐"라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노인을 따라 거처에 가보니 움막 정도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번듯한 서울 한남동의 양옥집이었다. 게다가 부인도 있고 자식도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노인을 미치광이가 아닌 정다운 친구처럼 여기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노인은 어릴 적 일본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고, 5개 국어를 구사하는 수재였다는 것.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을 했다. 큰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 신앙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던 것. 저자는 노인이 알몸과 맨발로 3년 동안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을 대신한 이사야보다 훨씬 뛰어난 선각자라고 생각한다.
   
2001년 7월 촬영 때문에 지방에 갔다가 올라오던 저자는 지하철에서 다시 노인을 보게 됐다. 노인은 평소처럼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질 때 노인은 저자에게 유난히 밝은 미소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한참이 흐른 뒤에야 저자는 그때가 노인의 마지막이었음을 알게 된다. 저자와 헤어진 노인은 1호선수원행 열차에서 전도하다가 의자에 앉은 채로 평온하게 돌아가셨던 것이다. 264쪽. DVD 포함 9천800원.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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