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7개월여 동안의 기나긴 임단협이 타결된 지 1주일 만인 지난 12월 8일, 서울 은평구 갈현동 청구성심병원. 병원 로비 한 켠에 붙어 있는 ‘노사합의서’만이 이 병원에서 그동안 노사 간에 무수한 진통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측은 본의 아니게 조합원들에게 정신적인 상처 등을 준 것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노조는 실추된 병원 이미지 제고와 경영정상화에 적극 협력한다.”
 
6% 임금인상 합의와 지난 2년간의 소급분 적용 포기, 교대근무자 근로조건 개선, 결혼 휴가 1주일 보장, 보수교육시 2만원 지급, 출산휴가 90일 등이 이번 임단협의 결과다.
 

 
“한시름 덜었을 뿐”
 
임단협이 타결되면서 조합원들은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이고, 비조합원들은 “2년 동안 임금동결 후 그나마 인상된 것이 어디냐”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병원 8층의 노조 사무실. 최윤경 지부장이 방문한 민주노동당 은평갑지역위원회 정태연 위원장과 대화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일만 잘하게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이번 임단협 타결에 대해 청구성심병원노조 최윤경 지부장은 짧게 평가했다. “합의하고도 찜찜한 것이 사실이에요. 한시름 덜었을 뿐이죠.”
 
그도 그럴 것이 병원측의 탄압에 맞서 노조는 ‘이사장과 경영진의 퇴진’을 외치며 장기간 싸워 왔고, 병원측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 왔다. 이사장과 경영진 퇴진을 철회하고, 2년간의 월급 소급적용 포기하는 노조의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타협할 바에야 우리가 왜 그토록 힘들게 투쟁했나.” 일부 조합원의 반발이 있었지만 더 이상 버티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물론 사측도 ‘부당노동행위’에 따른 검찰조사와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등이 계속 부담이 된 게 사실.
 

 
현재 청구성심병원노조의 조합원은 15명. 이 가운데 8명이 ‘적응장애’ 판정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98년 180여명에 달했던 노조원은 사측의 탈퇴 작업 등으로 1주일 사이에 40여명이 집단 탈퇴하기도 했고, 나아가 “더 이상 못 다니겠다”는 조합원들의 퇴사도 이어지면서 2001년부터 20명도 채 남지 않게 됐다. 그리고 더 이상 늘어나지도 않고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투쟁의 명분도 좋지만 노조 입장에선 ‘생존’이 더욱 중요했다.
 
“당장은 조합원들을 추스르는 게 우선이고요, 차근차근 조직 확대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에요.”
 
최 지부장은 홀로 상근하며 유인물 작성, 대외업무 등 이것저것 잡무를 죄다 처리하고 있었다. 부지부장은 육아휴직 중이고, 사무장은 임신 등으로 사실상 조합 업무를 하지 못하는 상황.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 지부장은 아직 ‘병동순회’도 못하고 있다. 노조원이 한 병동에 한 명꼴도 안 되기 때문에 부담은 더욱 크다.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도 비조합원들은 얘기를 듣지도 않으니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죠.”
 

“이만큼 버텨온 것이 용할 정도”
 
청구성심병원은 지난 7년여 동안 임금체불, 노조간부에 대한 ‘똥물 투척’ ‘식칼테러’ ‘업무감시’와 ‘왕따’, ‘업무 전환배치’ 등 노조 탄압이 극심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원들은 ‘적응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생기기도 했고, 지난해 9월 신청자 10명 가운데 8명이 산재 판정을 받았다. 정신질환에 따른 집단산재 판정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조합원들의 후유증 극복은 좀처럼 쉽지 않다.
 
“불안해하고, 손발이 저리고, 기억력은 감퇴하고, 밤에 잠을 못자고, 악몽을 꾸고, 병원 주위를 몇 바퀴 돌다가 간신히 출근하는 등 증세는 다양해요.” 최 지부장은 사측의 감시와 감독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이 아무개 전 지부장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에서 작성한 서류 이면지를 파쇄기에 넣는 것도 안심이 안돼, 그걸 비닐 봉투에 모아서 사무실 곳곳에 숨겨 뒀었죠.”
 
노조원들을 이토록 괴롭힌 것은 2000년 이전에는 폭행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강도 높은 업무와 스트레스였다. 조합원들이 많은 부서는 밤 근무로 바꾸거나,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연차수가 몇 년인데 일을 그렇게 밖에 못하냐.” 시말서를 쓰게 하고 징계를 주고…, 조합원에 대한 ‘차별’은 극심했다. 그러한 긴장 속에 몇 년을 보냈으니, 조합원들이 제정신으로 버티긴 어려웠으리라. 최 지부장은 힘겨운 표정으로 말했다.
 
“적응장애란 ‘매 맞는 여자’, ‘왕따 학생’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요. 환경을 바꾸는 게 제일 좋은데, 요즘 이직하기도 힘들잖아요. 복귀한 조합원들에 대해 병원측이 대놓고 탄압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관계는 서먹서먹하죠. 본인이 잘 추스려야 하겠고, 노조는 재발방지 약속을 한 병원측의 태도를 주시해야죠.” 
 
최윤경 지부장은 임단협 타결 이후 경영진의 달라진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총무과에 전화하면 예전의 싸늘한 목소리와는 달리 지금은 상냥한 목소리로 받아요.” 노사간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해 지역주민에게 사랑받는 병원이 되겠다는 청구성심병원 노사.
 
노조원에 대해 정신적 상처 등을 준 것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병원측의 의지가 더욱 궁금해졌다. “임단협 체결사항 외에 조합원들의 치료비 보상 등 몇 가지에 대한 이면합의를 했다.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청구성심병원의 김성현 노무팀장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합의서가 (노사) 서로 간에 (오해와 불신을) 풀라는 선언적 내용이었던 만큼, 앞으로 노사가 차츰차츰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인권’과 ‘노동권’ 지키기 소중한 싸움
 
산재치료를 받고 올 3월에 복귀한 4명 가운데 한 명인 권기한 조합원. 임상병리사로 지하1층 임상검사실에서 일하고 있는 그를 찾아 갔다.
 

 
“정신적 상처는 영원히 남고, 지울 수 없는 기억인데, 이렇게까지 투쟁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죠. 자살충동까지 느낀 조합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 잡았죠. 타결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나마 한숨 돌릴 여유를 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그는 여러 매체에도 소개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올 3월 회사에 복귀하기 전까지 노조 조직부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 그는 98년 회사 극기훈련장에서의 폭행사건과 똥물투척을 당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유일한 남자 조합원이었던 탓일까. 사측의 ‘표적’이 되어 그는 지난 몇 년간 일상적인 폭행과 위협 등 엄청난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불면증, 대인기피증, 우울증, 위궤양, 과민성대장증상…. 2001년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지난해 산재판정 이후 현재까지도 그는 치료에 안간힘이다. 우울증 치료에 좋다고 해서 출근 전에는 수영도 하고, 매주 화요일 퇴근 후에는 서울역 ‘무료노숙인 진료소’에서 봉사활동도 한다. 몇 년째 불임으로 마음고생이 컸었지만 증세가 호전되면서 최근 아내가 임신해 권씨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노조가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 민주노조를 사수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조직재건이 가장 큰 일이고 비조합원들과의 신뢰를 더욱 더 쌓아나가야죠.”
 
임단협 타결 이후에도 청구성심병원노조 15명 조합원 가운데 8명은 적응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잔인한 노조에 대한 다년간의 물리적, 정신적 탄압이 남겨놓은 뼈아픈 흔적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상처를 묵묵히 감당하며, 조합원들은 이후 탄탄한 노조를 만들기 위한 꿈을 그리고 있었다.
 
병원문을 나서며 보건의료노조가 밝힌 이번 청구성심병원 임단협 타결에 대한 평가가 새삼 떠올랐다. “노조 활동을 이유로 탄압을 받고, 정신적 피해를 입은 청구성심병원의 문제를 보면서 과연 이 땅의 노동자가 ‘인권’과 ‘노동권’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든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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