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진지한 열정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한번쯤 이런 생각을 가져봤다면 여기 기회가 있다. 더구나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스승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다. 친절하게도 이미 스승이 제자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단 제자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은 “세계를 구하려는 진지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세계를 구하려는 진지한 열망을 가진 제자를 찾아 나선 이 스승은 사람이 아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의 고릴라다. 인간에게 붙잡혀 인간의 문화와 언어와 역사와 철학을 배워 인간의 문명을 알게 된 고릴라 이스마엘은 이제 철장 속에 갇혀 있지만, 인간을 상대로 세상을 구하려는 제자를 찾고 있다.

제자를 찾아나선 스승 고릴라

고릴라 스승과 인간 제자. 이 얼마나 기괴한 만남인가. 하물며 이 둘은 세계를 구하고자 한다. 고릴라 이스마엘을 만난 인간 제자가 처음에 맞부딪힌 물음은 “인간이 사라지면 고릴라에게 희망이 있을까?”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인간들에겐 가슴 아픈 사실이지만 답은 “그렇다”이다.

인간이 사라지면 왜 고릴라에게 희망이 있을까? 고릴라 이스마엘은 인간 제자에게 인간사회 스스로에 대해서, 인간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인간이 여태껏 만들고 이루어 온 인간문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길 원한다.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면, 구해야 할 세상이 어떤 건지 당연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책에서 말하는 세계는 “인간세계”가 아니라 그냥 “세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세계를 인간세계와 동의어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세계에서 인간은 수많은 생물학적 종의 하나일 뿐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거나 또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세계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고,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는 정복되고 통치되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특히 서구문명은 역사를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인간의 투쟁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다. 스승 이스마엘은 여기서 인간 제자에게 묻는다. 자연과 세계를 정복함으로써 인간은 행복해졌는가? 세계는 더 좋은 곳이 되었는가? 문명은 인간의 삶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항상 세계는 더욱 더 부족함이 가득 차게 되었을까? 노동생산물은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하는 인간은 자신의 노동의 결과로부터 소외되고, 노동은 여가와 소비를 위한 괴로운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재화와 용역에 관한 시장경제법칙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의 순환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인구는 산술급수적으로 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도 빈곤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함에도 사람들의 삶은 질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삶의 터전은 좁아져 가고, 세계의 도처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기아선상에서 굶주리고 있으며, 숲은 사라져가고, 항상 있어왔던 물조차 부족해져 가고 있다.

문명을 반성하는 환경 철학서

점점 더 많은 생물들은 인간에게 자리를 넘기고 세계 바깥으로 사라져간다. 그럼에도 인간은 언젠가는 세상이 모두에게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러한 착각과 희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순환을 거듭하고, 세계는 이러한 인간의 무능력을 무한정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스승인 고릴라 이스마엘은 인간은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즉 생명의 다양성, 종의 다양성, 세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는 세계의 법칙을 애써 무시하려는 인간의 무지로부터 기인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이러한 결함을 모른 채 추락하는 문명의 비행선을 타고 하늘을 비행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인간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제 남은 것은 ‘추락’하는 비행과 자멸밖에 없다.

인간은 ‘세계가 인간에게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스승 이스마엘은 죽었지만 인간 제자에게 마지막 질문을 남겨놓았다. 그는 다시 묻고 있다. 인간이 사라지면 고릴라에게는 희망이 있지만, “고릴라가 사라지면 인간에게 희망이 있을까?”

생명의 먹이사슬에서 혼자 남게 될 인간에게 희망은 없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문명을 성찰적으로 돌아보고, 세계에 대한 관점을 바꾸지 않는 한, 인간에게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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