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

최근 엘리베이터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상품 가운데 하나다. 건물 꼭대기마다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기계실이 필요없어 건물 미관이 수려하고 시공비까지 덜 든다고 하니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동속도 등 좀 더 보완될 문제들이 없지 않지만, 대세는 이미 '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로 가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예측이다. 국내의 H사는 이미 '와이어로프형' 상품을 개발, 시판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국내 최대업체인 LG-OTIS엘레베이터(대표이사 장병우)의 처지는 조금 다르다.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제품에 관한 LG-OTIS 자체의 연구는 거의 중단된 상태라는 것.

대신 프랑스의 OTIS사에서 개발한 'GEN2'라고 하는 모델을 들여와 곧 시판할 계획이다. 특허권의 문제가 있어 20여개 부품 가운데 벨트, 안전장치류 등 핵심 10여개 부품은 전량 수입해야할 처지다.

이와 관련, 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이 상품은 우리의 기술력으로도 개발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다국적기업 OTIS의 이해가 반영된 결과, 우리나라 공장에서는 하청업체들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껍데기 정도만 만들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 노조는 과거 일본업체와 기술제휴 당시부터 일해왔던 고급연구인력의 상당수가 벤처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결과적으로 '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는 LG-OTIS가 '기술개발력없는 엘리베이터제조업체'로 전락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하나의 단서라는 얘기다.

*국내 1위와 세계1위의 만남

LG-OTIS는 99년12월 업계 국내 1위인 LG와 세계최대의 엘리베이터업체 OTIS가 합작하여 설립한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 전문회사.

OTIS는 이를 위해 150년 기업 역사상 최대규모인 8,300억원 가량을 쏟아부었으며, 지분비율은 OTIS와 LG가 각각 80.1%와 19.9%인 것으로 알려졌다.

1968년 국내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생산한 이래 국내 최고의 위치를 유지해온 구 LG산전빌딩사업부와 70만개의 엘리베이터를 포함, 연간 5만벌의 수직이동시스템을 생산해 세계 신규시장의 22%를 점유하고 있는 OTIS의 결합은 '국내최대생산능력 및 시장점유율(49%추정)과 선진기술 및 세계적 판매서비스네트워크의 접목'이라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끈 바 있다.

그로부터 약 일년이 지난 지금, LG-OTIS노조(위원장 최경호)가 쟁의발생을 결의하고 총력투쟁태세에 나서는 등 노사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파문은 인천공장을 창원공장으로 이전하려는 회사의 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노조가 제동을 걸면서 비롯됐다.

지난 8월말 시작된 본사 철야농성이 40일을 넘겼으며, 본사와 인천공장에서 수차례의 규탄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최경호 위원장과 안효균 인천지부장이 삭발했고, 인천지부 간부들이 구속결단식을 갖기도 했다.

임시노사협의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경영합리화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회사측 입장과 "인력감축과 함께 단기에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외국자본의 무리한 구조조정계획"이라는 노조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려왔다.

노조는 지난 5일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쟁의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면적인 투쟁을 벼르고 있다. 회사는 회사대로 11월까지 공장이전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대로라면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다.

* 인천공장 이전 둘러싸고 석달 째 공방

인천공장 이전은 구 LG산전 당시 때도 수회에 걸쳐 검토됐으나, 그 때마다 유보됐던 사안이다.

최근의 갑작스런 공장이전과 관련, 임처일 부사장은 "국내건설 경기는 계속 침체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엘리베이터 시장의 매출규모도 하향추세에 있다. 회사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한 자구노력을 필요로 한다. 인천은 물론 창원공장의 가동률이 저조한 실정에서 통합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노조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노조측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장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매출 계획대비 109%의 실적을 올려 경영계획에 따른 생산계획을 달성하고 있으며, 꾸준한 자구노력의 결과 97년 대비 430명이던 인원이 8월 현재 246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회사측이 공장이전을 밀어붙이는 것은 퇴직을 유도해 인력을 손쉽게 정리하고 향후 창원공장에도 아웃소싱 등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전개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회사입장은 다르다. "회사의 입장은 구조조정은 하되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한 사안입니다. 창원으로 이사를 가기 싫다는 얘기인 겁니다. 종업원은 회사의 인사명령을 따를 의무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현 사태를 단순히 인천거주 조합원들이 창원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반발로만 보기는 어렵다. 대의원 구성비율을 보면, 전체 31명 중 직접 이해당사자인 인천지부의 대의원은 불과 3명. 설치 보수업무를 맡고 있는 서울지부가 17명이고 나머지가 창원공장의 몫이다.

그러나 지난 5일 대의원대회에서 20명의 대의원이 쟁의대책위원회 구성에 찬성했다. 임단협도 아닌 전체 조합원의 8% 남짓한 인천공장의 이전 반대 투쟁과 관련, 이 정도 결의가 나왔다는 것은 무언가 전 사업장에 공통된 불안요소가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OTIS자본에 대한 불신과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는 전면적 구조조정 징후에 대한 노조원들의 위기감이다.

"OTIS의 의도는 이런 것 같습니다.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 안정적으로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면서 한국법인은 설치, 보수, 영업 쪽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죠. 완성품을 만들던 우리나라 공장은 부품하청기지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최경호 노조위원장)"

"단기적인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서 장기적 전망을 제시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얘기입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OTIS의 문화와 기왕에 가지고 있던 특징을 접목해 글로벌 컴퍼니로 육성하기 위한 계획을 경영진은 가지고 있습니다.(임처일 부사장) "

* LG-OTIS 결합의 '역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세계 최대의 판매망을 갖춘 OTIS이지만 정작 LG-OTIS의 수출은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역시 회사측이 정확한 데이터를 밝히고 있지 않은 가운데 노조는 54개국이던 수출선이 38개국 정도로 줄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LG시절 확보했던 수출선이 OTIS의 다른 현지법인에 의해 잠식되고 있기 때문으로 노조는 보고 있다. "중국에도 OTIS가 있고, 일본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습니다. 가격은 중국이 싸고 품질은 일본이 앞선다고 봐야 합니다. 이윤이 많이 남는 곳의 상품을 팔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거래하던 곳이 상당수 대체되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건설경기가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구조조정 불가피론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LG-OTIS는 해외매각 이후 나타난 수출선 축소, 기술개발 위축 등의 상황이 겹쳐지면서 더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필요로 한다는 역설에 직면해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업체의 해외매각은 위기탈출의 유력한 대안 가운데 하나로 인식돼 왔고 효과 또한 없지 않았다. 그러나 LG-OTIS의 사례는 매각과정에서 외국자본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장확보형, 재매각, 하청기지화 등 다양할 수 있는 다국적기업의 투자목적에 따라 우리가 확보해 둔 기술력과 생산기반은 얼마든지 사장될 수 있으며, 노동자들도 언제 구조조정에 노출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가능성은 언제든 '높은 수치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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