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재가노인을 위한 복지대책으로 1996년부터 시행해 온 가정도우미. 그러나 가정도우미들은 요즘 힘들다. 수혜자는 자꾸 늘어나는데 99년 이후 가정도우미는 한명도 뽑지 않았다. 그래서 도우미 1인당 4~5명을 돌봤던 비중도 8~12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 가정도우미들의 일상을 찾았다. 

도우미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

지난달 29일 오전 9시30분. 월계4동 동사무소 가정도우미실에 모두 모인 노원구 A팀 가정도우미들은 전날 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한 뒤 간단한 회의를 갖고, 각자 수혜자의 집으로 향했다.

서울시에 가정도우미제도가 처음 생긴 96년도부터 도우미 활동을 시작한 조언년(57세) 가정도우미를 따라 나섰다. 수혜자의 집으로 향하는 그의 두 손에는 큰 봉지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그게 뭐예요?”
“수혜자가 부탁한 생필품이랑 약이에요. 수혜자가 직접 약 타러 오기 힘드니까 대신 타가지고 가는 거예요.”

가정도우미들은 외출이 힘든 수혜자들을 위해 필요한 생필품이나 반찬거리 등의 장을 봐주는 것은 물론 약도 대신 타준다.

그가 처음 찾아간 수혜자는 정의옥(87세) 할머니. 허리와 무릎 관절에 골다공증까지 있는 할머니는 좀체 움직이질 못한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할머니는 "가정도우미 어때요?"라는 질문에 "얼마나 좋은 줄 몰라"라고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조언년씨는 “할머니한테는 내가 매일 와서 돌봐드려야 되는데 새로운 수혜자가 생겨서 일주일에 2번밖에 못 와요”라며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모른다. 곧 웃옷을 벗어던진 가정도우미는 냉장고를 열더니 “할머니 뭐해 드릴까?”묻는다. 할머니는 “호박무침 해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이때부터 가정도우미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오기 전까지 할머니가 마실 물도 새로 끓여놔야 하고, 할머니의 부탁대로 호박무침도 만드는 중이다. 가정도우미는 잠시도 쉴 틈 없이 분주히 움직였다. 걸레를 빨아 청소도 하고, 냉장고도 정리한다. "다음에 올 때는 고기반찬 해줄테니까요. 냉동실에 있는 고기 좀 할아버지한테 하루 전에 밖에다 내놓으시라고 해주세요. 아셨죠?"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 가정도우미.

조언년씨 일하는 동안 할머니에게 가정도우미의 하는 일에 대해 몰래 물었다. 대뜸 “다 잘해. 얼마나 좋은지 몰라.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해줘. 병원에서 약도 타다주고, 살 거 있으면 다 사다주고, 반찬도 다해주고. 이리저리 일하느라 바빠. 고생도 많이 하고. 그래서 항상 고마워”라며 연신 '잘한다', '고맙다'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도우미 수 절대 부족…서울시 인력충원 안해

돌봐야할 수혜자가 많은 가정도우미는 한 집에만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아쉬워하는 할머니를 남겨두고 옆집에 사는 양분이(84세)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양분이 할머니는 깐깐하기로 유명한 분이란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바쁘셔? 그릇 좀 닦아놓고 가셔”라며 설거지 주문을 하는 할머니. 역시 반가워하는 표정이다. 양분이 할머니에게 가정도우미는 어떤 존재일까? “나는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그런데 가정도우미가 다 해주잖아요. 빨래도 해주고, 뭐 다 해주고 안하는 게 없어요. 그래서 나는 아예 살림을 맡겼어요”라고 대답한다.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본인의 집을 방문하는 가정도우미에게 살림을 맡긴다니 대단한 믿음이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다.

"도우미가 너무 바빠. 사람이 모자라니까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잖아.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왔으면 좋겠는데 하루에 한 번씩 못 오잖아요. 그래도 정부에서 돈이 없으니까 할 수 없지 뭐.”

그런 할머니에게 돈이 없어서 가정도우미를 못 뽑는 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면 정부 정책을 이해하실까?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가정도우미 100명 채용 명목으로 10억원의 예산을 편성한 바 있지만 서울시에서는 아직까지 인력 충원에 대한 어떤 계획도 세워놓지 않았다.

“도우미 아줌마 아니면 못살아. 그냥 죽지 못살아. 해먹질 못하는데, 어떻게 살아. 도우미 숫자가 많아서 날마다 왔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양분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은 가정도우미가 아니라 "다른 봉사기관과 중복된 수혜자가 많기 때문에 서울시가정도우미는 더 뽑을 필요 없다"고 말하는 서울시 복지여성국일 것이다.

가정도우미가 빨래를 마치자, 양분이 할머니는 미나리로 물김치 좀 담아달라고 주문하셨다. 미나리를 사기 위해 장을 보러가는 도우미를 따라나서다가 최복순(59세) 가정도우미를 만났다. 최복순씨는 중풍을 앓고 있는 서옥례(66세) 할머니를 모시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중이란다. 그녀는 매주 세 차례, 서옥례 할머니를 모시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다. 잠시 물리치료실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이번에는 설인숙 가정도우미를 만났다. 노원구 A팀이 맡고 있는 월계동에는 임대아파트가 많아 한집 건너 한집이 수혜자의 집일 정도다. 그러다보니 도우미들끼리 마주치는 일도 잦다. 

“이 사람 도움 없인 못 살아요”

설인숙씨를 따라 간 곳은 관절염을 앓고 있는 서순애(76세) 할머니의 집. 설인숙도 할머니의 약을 대신 타왔다. “할머니가 먹던 약 하나가 지난달 1일부터 금지됐대. 그래서 이거 녹색약 있지? 이게 부작용은 없으면서 관절에는 효과적이라서 넣었다고 의사선생님이 그랬거든요. 할머니 얼굴 빨개지고 그러는 게 어깨 관절이 너무 심해서 그런 것 같다니까요. 먹어보고 이상하면 빼고 드셔보세요”라고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할머니 약은 먹었어요? 어때요? 괜찮아요?”
“아침에 먹었어요. 약간 후끈후끈하긴 해도 어제 보단 나은 것 같아.”
"그래요. 그럼 약 드셔보세요. 자 그리고 할머니 발..."

가정도우미는 할머니 발을 주무르며 마사지를 시작했다. 24시간 내내 복대를 차고 있어야 하고, 의자가 아니면 앉을 수도 없다는 할머니를 위해 가정도우미는 손수 발마사지를 배웠다. 서순애 할머니는 "어휴. 괜찮아요"하시면서도 “자식이 어떻게 매일 이렇게 해줘요. 팔 아픈데 그만두세요. 다른데도 바쁘게 다니시는데…”라며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바쁘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오후 1시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는 쉬는 시간도 없이 또 수혜자의 집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중도장애인 나경숙(49세)씨의 집으로 향하는 김옥례(54세) 가정도우미를 따라 나섰다. 나씨에게도 가정도우미가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다. “살아가는 데 한결 편하죠. 휠체어와 침대에서 밖에 움직일 수 없는데, 이분 도움이 아니면 살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도움을 받아야 될 것 같은데요"란다. 가정도우미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하자 "가정도우미들이 더 많다면 아무래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한테 도움이 많이 될 텐데요. 도와주시는 분들도 버거운 것 같아요. 가정도우미가 더 많으면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 할 것을 2시간 정도 할 수도 있을 테고, 저희 같은 사람들도 윤택한 혜택을 얻을 수 있을텐데..."라며 아쉬움을 보인다. 실제로 가정도우미들이 수혜자의 집에 머무는 시간은 1시간 내외라고 한다. 하루 동안 돌봐야 할 수혜자가 5~7명 정도에 이르니 한 집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는 것이다. 

“수혜자는 느는데 도우미가 부족해요”

이번에는 이창옥(50세) 가정도우미의 뒤를 따랐다. 이창옥 도우미는 임옥분(88세) 할머니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의 손을 덥석 잡는다. 할머니도 손을 꼭 맞잡으며 “요리, 철썩 앉아”라며 자리를 내준다. 그러더니 지갑을 뒤져 꾸깃꾸깃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며 "가서 맛있는 거 사가지고 와"라고 한다.
 
가정도우미는 "밥 먹고 왔어요. 괜찮아요”라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수혜자의 집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이 가정도우미들의 철칙이다. 수혜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것. 그래도 임옥분 할머니는 막무가내다. “이봐. 귤을 사던지. 뭐를 살까? 뭐든 사야지. 좋은 걸 사가지고 와. 내가 나가야 되는데 나갈 수가 없으니까”라며 연신 돈을 내민다. 도우미 말이 할머니가 너무 마음이 좋아서 올 때마다 자꾸 뭘 먹으라고 하고, 주려고 해서 그걸 뿌리치는 게 일이라고 한다.

지금은 담당이 바뀌었지만 이창옥 도우미는 임옥분 할머니를 7년 동안 돌봐왔다. 그녀가 이제 다른 도우미가 온다고 할머니에게 설명했을 때 임옥분 할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금은방을 찾았다. 몇 년 동안이나 자신을 보살펴 주고 잘해줘서 그냥 보낼 순 없다고, 반지를 해주겠다고 우기셨단다. 기초생활비로 겨우 생활을 이어가는 할머니의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창옥씨. 가정도우미의 일이 그저 형식에 그쳤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창옥 도우미는 조소재(78세) 할머니에게도 무척이나 고마운 사람이다. 조 할머니는 중풍으로 편마비에 언어장애까지 있지만 16년 동안 장애등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이창옥 가정도우미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장애1등급을 받아왔다. 조 할머니는 “이 양반 덕을 겁나게 봤어”라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가정도우미들의 시급은 3,750원. 이 정도면 시급 좀 올려달라고 주문할 것도 같은데, 가정도우미들은 요구는 단 한 가지였다. "가정도우미들 좀 더 뽑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날마다 방문해서 돌봐드려야 할 분들이 너무 많은데, 수혜자는 늘면서 가정도우미는 뽑질 않으니 말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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