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고강도의 기업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위기를 불러온 근본 원인이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경제시스템에 있다고 보고 과거체제의 문제점을 고친다며 단행한 개혁조치였다.

이러한 기업구조조정은 2차 대전 직후 미국 점령의 일본이나 독일의 대기업이 해체된 것에 비견될 만한 급진적 개혁이었다.

하지만 비효율성과 불평등을 바꾼다며 취한 이런 개혁은 성장과 분배 모두 악화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무엇보다 투자부진이 예상보다 심각하다. 1991년에서 1997년 사이 연평균 12%씩 증가했던 제조업부문의 유형자산(공장건물·기계 등)은 1998년에서 2002년 사이에 불과 3%에 밖에 늘지 않았다.

일부 대기업들은 자금이 넘쳐 사상 최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2003년 4월에 터진 ㈜SK사태에서 보듯이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험 증대와 주주권리 강화에 따른 주주가치 중심 경영논리에 밀려 안전한 투자전략을 채택하다 보니 실질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 때문에 여유자금을 실물투자보다는 오히려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투자를 활성화시키는 정공법을 택하기보다 신용카드나 부동산 시장 자유화 등 소비진작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다 보니 신용불량자를 대량으로 양산하고 부동산시장 과열에 따른 투기만 조장하고 말았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한다며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절반 가량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비율이 50%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으로 치솟았다. 이에 따라 노동자간 임금격차는 더욱 커졌다.

이런 가운데 절대빈곤층이 국민의 5.9%에서 11.5%로 2배 이상 늘었고, 빈곤층의 급증과 소득분배의 악화는 커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우려된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와 싱가포르 국립대학 경제학과 신장섭 교수는 공동저서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무엇이 문제인가'(창비 펴냄)에서 이처럼 1997년 금융위기 이후의 구조조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이 책은 2002년 5월말 영어로 펴낸 것을 우리말로 재번역한 것이다.

두 사람은 한국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신자유주의라는 전지구적인 도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데서 찾는다.

그럼에도 국제통화기금(IMF)가 주도한 제도적 개혁들은 국가-은행-재벌로 이어지는 전통적 한국 경제시스템 자체를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몰아가면서 한국경제의 발전수준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영미식 기업구조 및 금융시스템을 억지로  심으려고 했으며, 그 결과 나름의 강점을 지니고 있던 기존 경제시스템은 해체되고  국민경제에 과도한 비용을 초래하게 됐다고 두 사람은 주장한다.

두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개혁정책의 잘못된 점을 시정해야 한다며 맹목적 개혁옹호론을 극복하고 과거 우리 경제체제의 장점을 살리면서 세계화되고 민주화된  새로운 시대에 맞는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이들은 창조적인 산업정책을 실시하고 국제자본이동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회복하는 등 국가를 재활성화해야 하며, 재벌비판과 옹호의 양극화한 단순논리를 넘어 국제경쟁에서 효과적인 무기로 작용할 수 있는 기업그룹화의 강점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64쪽. 1만3천원.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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