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나갈 땐 연봉 6천까지 받았는데…. 지금은 한 달에 5일 일하면 많이 하는 겁니다. 올해 일한 날 수가 10여일도 채 안 돼요.”
 
“그러니까 마누라가 도망가지. 우리 각시가 돈 못 벌어온다고 며칠 전 짐 싸들고 집을 나갔어요. 도망간 각시 찾아야 하는데 염치가 없어 엄두도 못 내.”

“배전공인지 대리운전사인지 모르겠어. 요새는 일 없는 날이 더 많아서 대리운전도 하고 건설현장에서도 일도 하고 배전공은 말 그대로 부업이 된 것 같아.”

올 가을 들어 가장 춥다는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 앞에 100여명의 배전노동자들이 침낭을 깔고 누웠다. 몇 겹으로 껴입긴 했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날 오전 전국에서 상경한 배전노동자들은 ‘배전예산확대 및 생존권 보장’을 한전에 요구하며 온 종일 결의대회를 했다. 이들이 한전 앞에 천막을 치고 2박3일간 농성을 벌이려 했으나 천막을 칠 경우 전행 연행한다는 관할 경찰서의 말에 무작정 노숙농성을 진행키로 한 것이다.

배전노동자는 2만2,900V의 특고압에서 활선 작업(전기가 살아있는 상태에서의 작업)을 하는 노동자로 한국전력공사에서 발주하는 공사를 담당하는 전업사에 상용직이나 일용직 형태로 고용돼 있는 노동자들을 말한다.

정광수 건설산업연맹 전기분과장은 “한전에서 밝히기를 전국에 배전공이 약 2만명 정도가 있는 데 현재 8천명이 전업사에 고용돼 있다고 한다. 결국 1만2천명의 배전노동자들이 실직상태란 말인데, 한전에서 한참 경기가 좋아서 배전노동자들을 양성해 놓고 이제 일이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건 회사에서 노동자들 강제 해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어 그는 “올해 들어 배전업체의 공사계약이 50%이상 축소됐고 한전에서 전업사 보유인원을 15명에서 11명으로 축소하면서 배전노동자들은 한 달에 열흘도 채 일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국정감사에서 한전은 배전설비에 대한 보수 확대,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재해예방을 위한 배전설비 보강을 지적받았음에도 이에 대한 예산 확대와 실질적인 사업 이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연맹 전기분과는 △배전예산확대 △고용보장 및 실업대책 △산재예방대책 △보유인원제도 축소 중단 및 보유인원제도 실질 적용을 요구하며 26일부터 사흘간 상경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

 

운 좋으면 사망, 운 나쁘면 1급 장애

배전노동자들은 높은 전류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해야만 해 작은 실수에도 목숨과 잃을 수도 있다.

15년간 배전일을 했다는 이주철(45)씨는 “한 달에 2~3명 다치는 건 다반사지. 배전일 하는 사람들은 운이 좋으면 사망이고, 운이 나쁘면 1급 장애”라고 말한다.

결국 배전노동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작업 시작전 받아야 하는 안전관리확약서를 몇 장씩 한 달에 몰아서 받기도 하고 방호(고압전류에서 보호해 주는 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작업을 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현장감독자나 안전관리자가 상주해야 혹 사고가 나도 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하는 데 이들이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이씨는 덧붙였다.

정광수 분과장은 “배전노동자들에게 안전보호 요구는 생명을 지켜달라는 말임에도 최근 전업사들은 작업량이 적어지니까 평소보다 현장에 적게 인원을 배치해 산재발생률이 높다”며 “한전에 배전노동자들의 사고와 관련한 통계치를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답변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시린 달을 벗 삼아 한뎃잠을 잔 이들은 농성 이틀째인 27일 노동부가 위치한 과천정부청사를 찾아 또 외쳤다. "배전노동자의 산재예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 "실업대책 내놔라", "생존권 보장을 위한 한전의 조속한 조치를 촉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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