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를 맞아 운수·호텔·할인점 등 서비스 노동자들의 손길은 더욱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백화점·재래시장 등에서 추석 특수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택배업체와 대형 할인매장은 여느 해와 다름없이 분주하다.

‘민족 대이동’을 책임지는 운수노동자들이나 할인점, 골프장의 서비스노동자들은 5일간의 긴 연휴동안 ‘온 가족과의 훈훈한 명절’을 반납한 채 자신의 일터에서 더 '정신없는' 연휴를 보낸다.

“귀성 길 걱정 마세요”

“한가위 민족 대이동이 이틀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국의 주요 고속도로는 어제에 이어 극심한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가지만 고속도로의 정체는 갈수록 심해지고, 고향으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 역시….”

올해로 8년째 고속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김광훈(51)씨에게 온종일 라디오에서 떠들어 대는 ‘귀성길’ 이야기는 다른 나라 얘기다. 그에게 중요한 건 가능한 한 그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평소 시간대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대전에서 전주까지 소요시간 1시간40분. 평소 김씨는 그 구간을 하루 7회 운행하는데 ‘민족의 대이동’으로 일컬어지는 추석 연휴기간에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똑같이’ 운행해야만 한다.

“사실상 불가능한 거죠. 주요 도로가 꽉꽉 막혀 있는데 무슨 수로 평소 시간대로 도착지까지 차를 댑니까. 보통 추석, 설날에 대전에서 전주까지 평소대로 운행하면 6시간이 꼬박 걸립니다. 잘해야 3번 정도 운행할 수 있는데 말이죠.”

추석 명절 귀성길 운전을 맡은 고속버스 운전자들이 평상시와 동일하게 운행해야 하는 이유는 ‘박봉’에 있다. 자신이 운행한 구간의 횟수 만큼 월급이 책정되는 그들은 추석 연휴와 같이 달력에 ‘빨간 날’이 가득할 경우 편법이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이용해 운행한다. 운행시간을 단축하는 것만이 평소와 다름없는 운행횟수를 유지하는 비법이다.

“당연히 신경이 날카롭죠. 다른 귀성객들처럼 부모님께 인사도 드릴 수 없어 짜증나는데 시간을 맞추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지, 화장실은 또 어떻고요. 손님도 몇 배는 많고 당연히 사고 위험도 높고…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 직업이 그런 것을.”

명절이 아닌 평상시에도 김씨는 이틀에 한번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대전에서 전주행 막차 출발시간이 오후 9시30분이기 때문에 전주에 도착하면 오후 11시. 대전이 집인 그는 어김없이 전주 숙소에서 1박을 한 뒤 대전행 첫차를 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행버스 9년, 고속버스 운전대를 잡은 지 8년째인 그는 올해도 꽉 막힌 고속도로 안에서 추석 명절을 보내고 있다.

“부산에 어머니가 계시는데 이 일을 하고부터는 명절 때 인사도 못 드리고, 아버지 차례상에 술 한 잔 못 올리고…. 아내가 음식솜씨가 좋아서 명절이 되면 푸짐하게 먹거리를 준비하는데, 직업상 명절날 만든 음식을 하루 이틀이 지난 후에 먹어야 하는 팔자죠. 온 가족과 함께 송편도 빚고 성묘도 하러가는 ‘민족의 명절’ 한가위인데도 말입니다.”

차라리 김씨는 추석은 견딜 만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세배도 못 받고 두둑한 세뱃돈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하는 설에 비하면 말이다. 오히려 김씨 가족들은 추석 연휴기간 교통상황을 알려주는 뉴스가 나오는 시간이 되면 마음을 졸이기 일쑤라고 했다. 사고가 잦은 연휴기간 혹여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그만둘까도 생각했습니다. 가족들과 따뜻한 명절을 보내야 하는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나선 귀성객들의 설레는 얼굴을 보면 어느 순간 이 자리 또한 내 자리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라고 말하는 김씨는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꽉 막힌 고속도로를 달린다.

서비스는 ‘주욱’ 계속 된다

올해 추석연휴는 5일이지만 대부분의 백화점과 할인점은 추석 당일 하루만 쉬거나 당일과 이튿날인 29일만 쉰다. 그러나 그랜드백화점과 그랜드마트, 편의점을 비롯해 외식업체들은 정상영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호텔, 골프장 역시 연중무휴 원칙은 ‘한가위’에도 어김없이 지켜진다.

할인점에서 캐셔(계산대)일을 맡고 있는 이영옥(32)씨는 ‘다행히’ 올 추석엔 부산에 있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활짝 웃는다.

이씨가 근무하는 할인점은 지난 설 연휴까지만 해도 고객만족을 내세우며 연휴기간 내내 개점했으며 연장근무 실시가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이번 추석을 며칠 앞두고 회사 쪽에서 추석 당일 근무할 사람들의 서명을 받는 등 28일 개점을 기정사실화했으나 노조가 사복투쟁을 하는 등 거세게 반발해 무산됐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추석 휴가에 더욱더 커다란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라는 이씨.

추석을 1주일 앞두고부터 이씨가 근무하는 계산대는 평소 10명이 근무했으나 아르바이트 5명을 지원받아 15명으로 인원을 늘린 상태. 그럼에도 지난해보다 바빠 제대로 밥을 챙겨먹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예년보다 손님이 3~4배는 많아진 것 같아요. 갈비, 과일은 추석 필수품목이고요. 김 세트가 올해는 각광을 받고 있어요. 평소보다는 선물꾸러미가 무척 작아졌지만 고객들 표정은 여전히 밝아요. 어떤 선물을 살까. 어떤 것이 좋을까 고민하는 모습까지도, 저 역시 올해는 명절을 가족들과 보낼 수 있어서 그런지 더 흥겹고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2시간을 꼬박 서서, 계산대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있는 고객들을 보면 가끔 현기증이 날 정도로 힘이 든다는 이씨. 하지만 자신에게 하루의 보너스가 주어진 만큼 평소보다도 환한 미소로 고객들을 대한다고 했다.

“절 필요로 해주니까 그것만으로도 흥이 날 수 있어요. 황금연휴라 남들처럼 쉬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유통업이란 것이 원래 남들 쉴 때 더 바쁘잖아요. 그래도 고객들이 우리들 서비스에 만족하고 기분 좋게 돌아갈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손님들 얼굴에서 기쁨과 설렘도 엿볼 수 있거든요.”

고된 자신의 노동으로 매장을 찾은 고객들에게 추석의 훈훈함을 안겨주는 이영옥씨는 ‘즐거운 추석 되세요’라는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비정규직법안, 국가보안법 등 ‘날선’ 얘기들로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는 없지만 추석 연휴 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풍요로운 한가위다.

특히 고속버스와 철도 등 추석 명절 대규모 운송을 책임지는 운송노동자들, 그리고 백화점, 호텔, 할인점, 편의점, 영화관 등 우리가 추석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일터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해주는 노동자들이 곁에 있기에 우리들의 추석은 더욱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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