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한전건물 건너편 파라오건물에서 97년부터 호프집을 경영해 온 함용재씨(40세)는 지난해 4월 새 건물주로부터 계약연장거부를 통보 받았다. 새 건물주가 직접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권리금 7000만원과 인테리어비 1억3000만원 등 2억원을 보상받는 것은 고사하고 계약서의 원상회복의무조항 때문에 가게를 임대이전의 상태로 회복해놓고 나가야 할 판이다.

현재 소송이 진행중이지만 상가나 사무실의 임차인들에게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같은 법적 보호장치가 없으며, 현행 민법에 재산권 등 물권과 임차권 등 채권이 충돌할 때는 물권이 우선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에 승소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함씨는 "상가에 세 들어 장사하는 동안은 늘 바늘방석 위에 앉아있는 기분"이라며 "좋은 건물주를 만나지 못하면 장사하는 동안 내내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임차인들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건물이 경매 처분될 때 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계약연장을 거부하거나 임대료를 인상할 때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실정과 관련, 최근 영세임대상인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민주노동당과 참여연대,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함께하는 시민연대 등 4개 시민단체들이 공동운동본부(공동대표 권영길 등)를 구성하고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운동을 선언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 단체는 26일 발족기자회견을 갖고, "상가임차인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현행 법·제도와 관행은 임차권을 보호하기에 너무 무력하다"며 "이번 국회 회기 안에 반드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집행위원장을 맞은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가족까지 포함하면 1000만명이 무권리상태에 있는 셈"이라며 "서명운동, 입법로비활동과 함께 피해상담 및 권리구제사업, 임차인교육과, 백서발간사업 등도 벌여나갈 것"이라고 사업계획을 밝혔다.
공동운동본부가 제시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건물경매 시 임차인의 보증금 우선변제 △건물매매 시 임대차 관계 승계 △10년간 임대차계획의 연속성 확보 △임대료 인상비율제한 △일부 시설투자비에 대한 상환청구권 보장 등을 골자로 구성돼 있다. 이들 단체는 다음달 10일 입법 청원에 이어 26일에는 공청회를 갖기로 했다. 또 12월에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을 위한 전국상인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한편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지난 15대 국회에서도 입법 청원됐으나 논의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자동폐기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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