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정치’라고 했다. 이라크 무장세력에게 피살된 김선일씨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피로 얼룩진 가르침이다. 제대로 기억해 정부를 상대로, 그리고 수구언론을 상대로 싸우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조차 지킬 수 없다는 처절한 교훈이다.

제대로 기억하는 ‘각성된 대중’(informed public)이 없다면, 이라크 추가파병과 함께 모든 한국 국민은 일상적인 테러의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는 경종이다.

지난 3월11일 스페인에서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보이는 열차 폭탄테러가 발생해 200여명이 숨졌을 때, 저들은 ‘남의 일 같지 않은 알카에다의 스페인 테러’(조선일보), ‘스페인 테러, 강 건너 불이 아니다’(중앙)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만간 조중동은 외칠 것이다. ‘테러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미 제성호 중앙대 교수(국제법)는 동아일보 6월25일치 칼럼 ‘파병원칙 흔들려선 안 된다’에서 16대 국회에서 폐기된 이 법의 제정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울한 한국경제 시나리오

하지만 테러방지법 할아버지가 제정된다고 해도 테러에 대한 불안은 막지 못할 것이다. “빈번한 바스크족 테러 때문에 평소의 대테러 경계가 상당한 수준에 있는 나라인 스페인”(조선 3월16일치 사설)도 당했는데, 하물며 한국에서 그까짓 테러방지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테러에 굴복하면 안 된다’는 저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웃들에게 어떠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김선일씨 피살사건은 한국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라크 파병은 남이 아닌 자신의 문제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으로 인해 한국 사람은 누구나 김선일씨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전쟁에 휘말려드는 대가이다.

내가 생각하는 음울한 향후 한국경제 시나리오는 이렇다. “‘국내 대중교통수단(항공기·버스·지하철)에 대한 테러 조짐 → 대중교통수단 이용객의 급격한 감소 → 대중교통 인프라의 붕괴→ 관광·호텔·숙박업의 초토화 → 승용차 판매량 증가 → 환경적대적 교통환경 심화’가 그것이다. 사람들의 고립과 칩거를 부추기는 이런 상황은 그나마 잔존하고 있던 한국사회의 똘레랑스마저 봉쇄할 것이다.”(매일노동뉴스 2월24일치 참조)

또 있다. 추가파병이 강행되면 앞으로 수많은 어머니들의 통곡 소리가 이 땅에서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이슬람권의 ‘스페인 내전’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모든 전투적인 이슬람 세력은 모두 이라크로 몰려갈 것이다.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이라크판 ‘국제여단’인 셈이다. 이라크 전쟁은 침략 점령군인 미군과 미군을 돕는 군대에겐 ‘베트남전’이 될 것이다. 이라크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적으로 보이는, 피아가 구분되지 않은 그런 전쟁 말이다.

침략군이 주민들로부터 고립되는 정당성이 결여된 전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무차별한 ‘대량학살’이다. 부분적으로 한국전쟁이 그랬고, 베트남전은 말할 것도 없으며, 지금의 이라크 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평화·재건 목적 파병 홍보 부족했다?

조중동에는 한국군의 추가파병 목적이 이라크 ‘평화’와 ‘재건’임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거나 이라크 현지에 민간인 외교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글들이 자주 실린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는 정부를 꾸짖는다. “외교통상부와 국방부와 문화관광부에 묻는다. 이라크 추가파병이 결정된 이후 이라크인을 상대로 우리의 파병목적을 정확히 홍보하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 … 한국 홍보용 아랍어 웹사이트 설치 … 제안은 예산 타령을 하는 관계 부처를 전전하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6월25일치 칼럼 ‘외교부에 묻는다’)

동아일보는 서재만 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이원삼 선문대 교수의 긴급좌담을 정리한 6월24일치 A8면에 실린 기사에 ‘김선일씨 피살, 점령 아닌 재건 목적 파병 홍보 부족했다’란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 6월24일치 A5면 ‘허술한 정부 대응, 외교 총체적 무능’은 “정부가 추가 파병안을 확정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 테러에 대비할 국내와 현지 인력을 확보하고 외교망을 넓혀가는 일은 뒷전으로 미뤄온 것”이라고 비판한다.

두 가지만 지적하자. 하나는 ‘기억’이고 하나는 ‘제안’이다.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 300여명이 파견돼 있는데도 미국은 자국민이 참수당하는 사건을 막지 못했다는 게 하나다.

두 번째는 평화와 재건에 대한 홍보는 조중동 너희들이 하라는 것이다. 국내에 무가지를 살포하는 대신, 이라크어로 된 중동판을 제작해 대량 살포하면 될 것이다. 용지대와 인쇄비 등은 아마도 기꺼이 정부에서 부담해줄 것이다.

단, 이라크 내 쿠르드족 거주지역에는 배포해선 안 된다. 독립을 원하는 그 지역에서 이라크 평화와 재건이라는 한국군 파병 목적은 그리 환영받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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