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족이야기> 책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엔 현대재벌 가족사를 다룬 책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이 책은 현대재벌과는 거리가 먼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 부인의 목소리를 통해 이들 가족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들었던 생각은 이 책을 노동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기업의 노무관리가 개인과 가족, 사회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12시간 주야 맞교대라는 근무형태가 노동자와 가족생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그래서 노조는 어떤 과제를 안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여성학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한국가족의 현실’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노조의 과제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진 않다.

이 책을 손에 잡게 된 것은 지난해 보수언론으로부터 6,0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며 ‘노동귀족’이라고 공격받았던 현대차 노동자들이 ‘과연 노동귀족인가’에 대한 해답을 줄 것이란 식의 책 소개를 어디선가 봤기 때문이다. 현대차노조 등 금속산업연맹을 출입처로 맡고 있는 기자로선 직접 경험할 수 없는 현장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보고 싶은 욕구가 늘 있었던 것이다. 더욱 관심을 끌었던 것은 ‘변화에 직면한 오늘날의 한국 가족과 여성의 삶을 통해 노동자 가족과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는 설명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현대차노조 조합원의 부인으로 살고 있는 18명의 여성들이다. 이 책의 저자가 이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 형식을 통해 결혼 전의 삶, 전업주부로서 사는 이야기, 부부갈등, 노동자 밀집지역인 울산공동체에서의 인간관계, 기업경영전략과 가족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12시간 주야맞교대가 가족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결혼으로 인해 울산에 정착한 여성들이 남편이 야간근무를 할 때 겪는 공포감이라던지, 남편이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해 잠을 자는 동안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남편이 잠을 깨는 것을 걱정해 거리를 배회하는 장면 등이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현대차 노동자들의 ‘연봉’에 대해서도 기존에 알고 있던 ‘논리’들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편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1.2년에 연봉은 3,800만원이었다. 그러나 95%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시급제로 임금을 받기 때문에 연장근로 즉, 잔업과 특근의 양에 따라 급여차이가 많이 났다. 예컨대 주말주간의 특근시급은 통상 시급의 1.5배이고, 주말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철야특근을 하면 보통 시급의 약 3배 정도를 받는다. 주말 철야특근을 하면 대략 20만원 가량의 추가수입이 생기는 구조다. 따라서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근무하고, 매일 2시간씩 연장근무와 주말에도 한달에 두 차례, 총 28시간의 특근을 했을 때는 4,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사정은 부인이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주말특근을 몇 번 더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현대차노동자들이 생각하게 만든다.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는 남성노동자들이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게 되는 전업주부로 사는 여성들이 무뚝뚝한 남편에 불만이 쌓여도 회사에서 실시하는 공장견학에 참가하고 나면 ‘불쌍한 남편’에 대해 “더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장면도 곱씹어볼만한 장면이었다.

한달 100만원도 받기 힘든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하면 중산층에 속할 수도 있는 가정이지만, 이들 가족이 상당히 검소한 생활을 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100% 육체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고 있는 이들이 건강이 나빠질 경우와 정리해고 등을 늘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었다. 실제 앉을 곳도 없는 작업장에서 하루 종일 기계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일하는데다 야간근무를 해야 하는 점은 근골격계 질환에 완전히 노출돼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울산지역 노동활동가 중에선 꽤 이름이 알려진 조주은씨다. 조씨는 현대차 생산직 노동자로 근무하는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가 노동자의 아내로, 연년생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사람이어서 글에 생생함이 더 묻어난다. 조씨는 현재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민주노동당 <이론과 실천>의 칼럼 ‘여론女論’을 쓰고 있다. (펴낸 곳 이가서, 신국판 348쪽, 1만5,000원)

송은정 기자(ss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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