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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한국여성의 역사'공순이’에서 ‘여성노동자’로 서다
1970년 한국의 노동사를 시작한 그녀들의 이야기
“동일방직이 첫 직장이에요. 66년 1월 18일 들어갔어요. 중학교 들어갔다가 졸업은 못하고 어머니, 아버지께서 막노동판에 가서 일하시고 언니가 공장 다니는 것을 보면서 돈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난 엄연히 사실을 들었어요. 1970년 11월 13일이었죠. 전태일이 분신한 날, 친구 김명순이 버스를 타고 가다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명순이가 얼굴이 퍼레져 와서 그 이야기를 전했어요. 생김새로 봐서 젊은이인데 온몸에 불을 붙이고 달려 나오며 ‘노동조건을 바꿔라’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대요. 무척 자세히 봤어요. 명순은 잠을 못 이루고 며칠 밤을 샜습니다.”(숨겨진 한국여성의 역사 중에서)

르포 작가 박수정의 <숨겨진 한국여성의 역사>는 바로 이 ‘공순이’들이 투쟁과 몸부림을 통해 어떻게 ‘여성노동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를 조목조목 기록하고 있다. ‘노동조합=빨갱이’라는 등식이 일반적이던 1970년대, 노동자와 여성이라는 이중의 억압구조를 깨고 척박한 이 땅에 민주노조 운동의 씨를 뿌린 5명의 여성노동자. 책은 이들의 삶을 밀착 추적 한다.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씨와 YH무역 노조위원장이었던 최순영씨. 전 원풍모방 노조부위원장 박순희씨. 전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이철순 위원장, 전남제사 노조위원장을 지낸 정향자씨 등 5명의 삶은 한국의 현대사가 노동자, 특히 여성노동자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이들이 공장에 첫발을 디딜 때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혹은 오빠와 동생들의 학업을 위해 순하고 평범한 공순이의 이름이었지만 공장을 쫓겨 나갈 때는 우직하고 정의로운 여성노동자의 이름이었다. 노동자라는 이름 하나 가슴에 새기고 조그만 몸뚱이 서로 엮어가며 한국의 여성노동사를 일군 그들이다.
흔히들 여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살기 좋은 세상이 자고 일어나니 누군가 선물로 준 것처럼 말이다. 예전보다 삶이 나아졌다면 그건 오롯이 그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똥물을 뒤집어쓰면서까지 거침없이 싸워온 저들의 몫일 터다.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헌신해온 그녀들의 아낌없는 희생에는 제 배를 골아가며 보름달 빵 한 조각 나누었던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중심에 있었고 그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었고, 민주노조가 다시 사람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해가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아름다운 그물을 짜왔던 삶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 황현숙 부회장은 “이 책은 여성노동자들의 산 증거이자 역사의 증거물이다. 온갖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인간의 소중함을 가슴에 품고, 그 소중함을 지켜내고 가꾸어내기 위해 서로의 어깨를 걸고 몸과 피로서 일구어낸 발자취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을 것”이라며 출간의미를 평가했다.

한국현대사에서 언제나 숨겨져 있었던 여성노동사, 5명의 공순이들이 여성노동자가 되는 기나긴 인생길을 다룬 이 책의 의미는 바로 ‘숨겨져 있던’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꺼내 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아름다운사람들 냄, 368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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