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길이 있다", "책은 말없는 스승이다" 등 독서에 관한 격언들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책 읽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 국가 혹은 사회를 이끈다고 할 지도자들은 책 속에서 지혜와 가르침을 얻어왔다. 베트남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치민은 어린 시절부터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책을 구해 읽으면서 민족주의와 애민사상을 키워왔다고 한다. 호치민이 훗날 다산의 제삿날을 알아내 혼자 추모하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산의 저서가 호치민에게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 스승이었던 셈이다.

무더운 여름 8월. 투쟁과 교섭, 조직사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노조간부들. 한국 노동계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책을 얼마나 읽고 있을까.

* "너무 바빠서…"
본지가 조사한 독서실태 결과를 보면 노조간부의 45%가 한 달에 책을 1∼2권 정도 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응답자 가운데 상당수가 투쟁이 집중되거나 임·단협 기간에는 한 권도 읽지 못할 때가 많다고 대답, 평균적으로 1년에 책 10권 정도를 읽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지난해 문화관광부가 한국출판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이 10권으로 집계된 것과 비슷한 수치다. 우리나라 독서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는 점과 한국사회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노동계를 이끌고 있는 노조간부들이란 점을 감안하면 1년에 10여권은 사실 기대 이하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왜 노조간부들은 책읽기가 힘든 것일까.
60%의 노조간부들이 너무 바빠서라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 달에 한 권도 읽기 어렵다'고 응답한 민주노총 한 연맹위원장은 "연맹 사업에 필요한 문건 등 자료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때가 많다"며 "회의, 집회 등 일상적으로 너무 바쁠 뿐 아니라 막상 책을 읽으려고 해도 연맹 걱정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토로했다. 책을 읽지 못하고 있는 간부들은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하지만 책을 읽을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 결국 게으르기 때문이란 비교적 솔직한 답변을 한 간부도 22%에 이르고 있으며 일부 노조간부들은 신문, 시사잡지 등을 읽기 때문에 독서할 시간이 없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극히 소수에 한정되지만 노조 업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아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 응답자도 있다.

* "책 읽기는 습관!"
이런 실정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노조활동이란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독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습관의 문제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독서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아이북랜드 박진규 대표는 "현재 30대부터 50대 성인들은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하고 즐겁게 독서하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교육받지 못한 세대"라며 "서양 속담에 '지도자는 독서가다(leaders are readers)'는 말이 있듯이 한 집단을 이끌어 가는 노조간부라면 독서는 생활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독서는 바쁜 일상의 시간을 쪼개 많은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홀로 노력해야만 달콤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며 "바쁘다는 이유를 들기 이전에 노조간부들이 언제 어디서나 책을 소지품처럼 항상 갖고 다니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책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의 인간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수많은 조합원들을 이끌고 나가야 할 노조간부들이 책을 가까이해야 할 이유가 아닌가 싶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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