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책을 통해서다"라는 어느 철학자처럼 책은 한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한국 노동계를 이끌고 있는 노조간부들은 어떤 책을 감명 깊게 읽었을까.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특정 책이 압도적 지지를 받기 보다 노조간부들의 제각각 다른 상황과 성향만큼이나 다양한 책들이 지목됐다. 이런 가운데 한국 근현대사를 집중 조명한 조정래씨의 대하소설인 '태백산맥', '한강'이 각각 3명의 추천을 받아 가장 많이 선택됐다. 조정래 의 '아리랑'도 2명이 선택했다.

조정래씨의 대하소설은 태백산맥이 지난 7월 당시 집계로 580만부가 팔렸으며 아리랑은 370만부, 한강이 200만부가 나가는 등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현역 작가와 평론가 50인이 뽑은 '한국 최고의 소설'로 선정, 작품성도 검증 받은 책이다. '태백산맥'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고 답한 서비스연맹 호텔리베라노조 박동민 위원장은 "인간 내면의 이념적 갈등을 객관화시켜 조명해 볼 수 있어 깊은 울림이 남아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몇 해전 신드롬을 일으킨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평전도 노조 간부들이 꼽은 감명 깊게 읽은 책 가운데 하나다. 공공연맹 황민호 수석부위원장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는 말은 아직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며 "민중에 대한 사랑과 혁명에 대한 열정이 조금이라도 가슴에 남아있다면 체 게바라는 당신 앞에 있을 것"이라고 평전을 읽은 느낌을 전했다. 금융노조 김기준 정치위원장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브라질 노동자당에서 배운다'(켄 실버스타인 외)라는 책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희망과 감동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가장 '자본주의적'이라고 할 증권사 출신인 사무금융연맹 정용건 부위원장은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무하마드 유누스)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 부위원장은 "이 책은 방글라데시에서 보증과 담보 없이 인간의 신용만을 믿고 대출을 실행,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적 자립을 이루게 하는 은행의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다"며 "현실에서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책"이라고 말한다.

책 한 권으로 삶의 방향이 결정된 사람도 있다. 한국노총 천안지역일반노조 최만정 위원장은 한국 현대사의 역사인식을 다룬 '해방전후사의 인식'(송건호 외) 덕택으로 노동운동의 길을 걷게 된 것 같다고 회상한다. 언론노조 박강호 부위원장 또한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는 오늘의 자신을 만든 책이라고 말한다.

그 동안 모르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책을 통해 발견한 이도 있다. 금속산업연맹 김호규 사무처장은 "지난 98, 99년 구조조정 투쟁 과정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한국의 풍수사상(최창호)이란 책을 읽게 됐다"며 "내 속에 흐르는 '바람과 물'에 대한 끼를 알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이밖에 성경, 전태일 평전, 삼국지, 엉클톰슨 캐빈, 로마인 이야기, 모택동 어록, 백범일지 등 다양한 책들이 노조간부들의 가슴속에 감동으로 남아 있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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