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그치면 한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한여름 화기(火氣)가 들끓을 때 역사를 읽고 고민한다는 것은 썩 좋은 궁합은 아닐 듯하다. 결코 가볍지 않은 역사를, 특히 격랑이 요동친 한국 현대사를 가볍게 접한다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현대사 산책>(이하 산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여행을 즐겨라"는 글쓴이의 말처럼 무거운 역사의 흔적들을 명쾌하게 꿰뚫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역사를 가뿐하게 시원시원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산책>이 역사 그 무게를 가벼이 치부하거나 편협한 시각을 내지르고 있는 것은 아니니 걱정들은 마시길.

<산책>이 역사를 다루면서도 산책하듯 가벼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글쓴이가 강준만 교수라는 점이다. 혹자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강준만 만큼 적과 아군이 뚜렷한 사람도 없기 때문일텐데. 그가 논쟁을 펼칠 때는 칼 같은 논리와 근거로 상대를 몰아 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는 우리사회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조선일보와 서울대주의에 맞서 전면전, 아니 생사를 건 싸움을 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만큼 강준만 교수는 논리와 근거에 철저할 수밖에 없다. 성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는 이책 집필을 위해 10여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1만여개에 달하는 주제별 파일에 근거했다는 것은 '강준만식' 철저함이다.

바로 <산책>이 가벼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책>이 여느 역사서와 차별되는 것은 논문과 서적 등 그 근거자료의 방대함도 있지만 다양하다는 점이다. 특히 방송·신문·잡지기사 등 그 시대에 발간된 모든 저널기사를 총망라하여 읽는 이에게 보여줌으로써 역사의 숨어있는 행간을 꿰뚫을 수 있게 해준다.
바로 이점이 읽는 이에게 역사를 생활로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역사를 관망하는 태도에서 '내가 말하고 참여하고 움직이는 것이 역사구나'하고 주체로 바꿔버리는 매력이 있다.
<산책>은 진행형이다. 현재까지 1970년대편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가 3권, 1980년대편 '학살과 저항의 시간' 4편 등 총 7권이 나와 있다. <산책>은 책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진보와 보수의 선이 명확하다.

전태일과 개발독재자로 대변되는 70년대 역사를 다룬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는 오로지 개발 지상주의만 판을 치며 전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일해야 했던 시대에도 인간다운 삶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역사가 존재했고, 경제성장과 의롭게 투쟁한 전태일과 수많은 선구적 투사들의 양립된 역사는 지금 한국의 민주화와 시민사회로 접어들게 한 동력임을 느끼게 한다.

80년대를 조명한 '학살과 저항의 시간'은 80년 광주의 분노와 슬픔이 독재타도의 불씨가 되어 6월 항쟁을 타오르게 했던 민중들의 역사로 이어진다. 봇물처럼 터진 국민들의 투쟁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서 이 땅 민중이 역사의 주인으로 나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삶의 기반임을 느끼고, 민족과 나의 미래를 미리 보고 싶다면 한 여름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권하고 싶다.

글쓴이 : 강준만,추천이 ; 김진현(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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