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채권 체당금을 신청한 노동자들이 엄격하고 까다로운 인정 절차 탓에 시간이 지연되거나 불인정 받아 상당한 고통을 겪는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체당금 인정까지 등골 빠진다"
서울 소재 IT업체인 A사의 경우 사실상 회사업무가 정지된 가운데 직원 30여명이 5억원에 달하는 벌써 10개월치 임금과 퇴직금을 못 받았다. 해당 직원들은 임금채권보장제도에 따라 노동부에 체당금 신청을 했으나 사업주가 폐업신고를 하지 않았고, 사업 재개 의욕을 보이고 있다며 체당금 지급 요건인 도산을 인정하지 않아 현재까지 체당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업체의 경우 부채도 많고 임대료를 지급 못해 사무실도 없는 데다 직원들도 떠나 정상업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해당 노동자들은 밀린 임금은커녕 체당금 지급도 기약할 수 없어 생계에 곤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A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ㅈ노무법인의 한 공인노무사는 "솔직히 체당금 인정을 받기까지 등골이 빠진다"며 "사업주가 도망가거나 도산을 인정할만한 일체의 서류를 남기지 않았을 때는 도산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체당금을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공인노무사가 맡았던 사건 중 A사와 비슷한 사례로 사업주가 사업 재개 의사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노동부가 체당금 지급을 인정하지 않아 행정소송까지 걸어 승소하기도 했다.
또 ㅅ노무법인의 한 공인노무사는 "그만큼 인정 요건이 까다로워 공인노무사가 대리하지 않고 노동자 개인이 체당금 신청을 내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라며 "공인노무사들 마저 체당금 신청 사건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 근로감독관 몸 사리기도 한 요인
까다로운 인정 요건은 물론, 조사를 담당하는 근로감독관들이 허위 청구 등을 우려해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점도 원인으로 꼽혀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르면, 체당금 지급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1년 이상 활동을 한 300인 이하 사업체 △사업활동 정지 △사업주 소재불명 △사업장 폐쇄 △생산시설 철거 등 사업활동이 정지됐거나 사업 재개 전망 및 사업주의 임금지급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서류로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사업주가 종적을 감추고 일체의 관련 서류를 남기지 않은 경우, 또 사업주가 실상과 달리 사업재개 의사를 피력할 경우 체당금지급을 인정받기가 어렵다.
게다가 체당금 관련 업무는 감사 대상이어서 일선 감독관들이 허위 청구을 인정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요건을 적용하는 한편, 조사를 위해서는 현장실사를 위한 출장이 필수적이나 일상 업무량이 많아 쉽지 않다는 노동부 내부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달에는 ㅇ노무법인 전주지사 사무장이 사업주와 짜고 고의로 폐업 후 체당금을 부풀려 받아 이를 가로챈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역시 결과적으로는 수개월째 임금체불로 고생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중시켰다는 점에서 현재의 체당금 인정 및 수급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노동부는 체당금 청구 건수 및 대비 지급 건수(비율)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내년 경제상황이 올해보다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상황에서 체당금 청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실정에서 임금채권보장제도는 시행 5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직장도 잃고 임금·퇴직금마저 못 받아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까다로운 요건이나 중간에 가로채이는 이중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임금채권보장제도의 손질이 필요한 시점이란 지적이다.
이와 관련,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체당금 인정 요건이 까다롭다는 민원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허위 청구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노동부도 이같은 문제의식에 대해 요건 완화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다음달 중 감독관 대상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윤정 기자(yon@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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