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임원직급파괴 바람이 불고있다.

기업의 '별'인 이사가 되면 상무 -> 전무까지는 웬만하면 오를 수 있었지만 전무쯤 되면 밀려서라도 부사장정도는 기대할 수 있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한번 별을 달면 5-6년정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옛말이 되고있다.

LG 두산 제일제당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평균 6단계인 임원직급을 절반수준으로 대폭 단축하고 있다.

직급파괴는 전체 재계로 확산될 조짐이고 평사원급에 적용하는 회사도 나타나고있다.

기업들이 노리는 것은 현재 실적이 좋지 않으면 과거 업적이나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바로 도태시키는 서구식 인사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서구식 인사시스템 확산=(주)두산 전자부문 이태희 상무(48)는 올초 이사에서 상무로 명함을 바꿨다.

그는 승진축하 전화를 많이 받았지만 사실은 두산그룹이 임원직급이 '이사대우->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 등 6단계에서 '상무->부사장->사장'의 3단계로 축소되면서 자동승진한데 지나지 않았다.

이 상무는 상무 직함을 달면서 회사측과 올해 1억3천만달러의 수출목표를 달성한다는 연봉계약을 맺었다.

수출목표를 초과달성할 경우 기본연봉외에 최대 1천8백%의 성과급을 받을 수있다.

반대로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성과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되는 것은 물론바로 상무직을 내놓게될 가능성이 높다.

그야말로 '써든 데스(Sudden Death:연장경기에서 먼저 승점을 내면 경기를 끝내는 방식)'식 실적평가 시스템이다.

이 제도의 효과는 개인실적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로 나타난다.

상무나 부사장 결재절차 없이 바로 사장을 만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빠른 대신 담당임이사로선 '무한책임'을 져야하는 부담이 따른다.

이사든 전무든 실적이 신통찮으면 그만둬야 한다.

두산은 올초 15개 계열사 1백30명의 임원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전격적으로 채택, 한번 이사반열에 오르면 보통 5년 이상 자리보전을 해주던 '철밥통 임원문화' 분위기를 완전히 떨쳐버렸다.

'일단 이사대우가 되면 웬만하면 상무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관행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두산 인사팀 김명우 차장은 "성과가 미흡한 조직원을 조기 도태시키고 업적이 많은 사람은 발탁하기 위한 시스템"이라면서 "시행 6개월만에 연공서열 승진개념이 사라지고 수평적 조직문화가 자리잡았다"고 소개했다.

<>평사원급도 직급파괴=두산그룹 계열 광고 대행사인 오리콤은 올 초 사원과 대리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 등 6단계 직급 중 대리와 부국장 직급을 없애고 4단계로 줄였다.

LG도 최근 임원직급체계를 사장-부사장-전무-상무-상무보 5단계에서 사장-부사장-상무 3단계로 단순화하면서 옥상옥 형식으로 돼 있는 조직운영 체제도 과감히 개편했다.

임원조직구조를 '대표이사-사업부장' 또는 '대표이사-사업본부장-사업부장' 3단계로 축소해 성과와 보상,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경영단위로 세분화했다.


이를 위해 임원들의 급여를 연공서열에 따른 호봉차이를 완전히 없애 성과평가에 따라 차별적으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고 LG는 소개했다.

제일제당은 작년말 5단계인 사장->부사장->전무->상무->상무보 등 임원직급까지 사장->부사장->상무의 3단계로 줄이고 회사내부에서 평사원들의 호칭을 아예 없앴다.

대신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르도록 했다.

외국계 기업들은 한 발 앞서 성과위주 경영과 수평적 조직구조를 실시해 오고 있다.

한국오라클은 지난해부터 6백30명 임직원들의 직급을 완전히 없애고 사장 본부장 실장 팀장 등 4개 직책으로만 부르고 있다.

<>특성에 맞는 직급 설계 시급=서구형 인사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한상공회의소 엄기웅 상무는 "직급파괴는 치열한 경쟁과 조기은퇴 급증으로 이어지는데 조직의 응집력이 떨어지고 사회 전반적으론 고령화되는데 일터는 젊어지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태원유 수석연구원은 "연공을 대체할 만한 명확한 객관적인 직무분석 및 평가제를 만드는 작업이 우선돼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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