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청사 전경 <홍준표 기자>

환경공무원이 약 20년간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채 과로에 시달리다가 ‘시신경염’이 발병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재해 공무원은 환경오염물질 배출사업장을 수시로 방문하며 유해물질에 자주 노출됐고, 약 4개월간 휴일 없이 연속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넉 달간 쉼 없이 일하며 민원인 폭언까지

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조서영 판사)은 논산시 환경과 공무원 A(53)씨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공무상요양 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환경보호과에서 근무한 지 17년째인 2017년 10월 오른쪽 눈 통증이 생겨 진료받은 결과 ‘우안 앞허혈성 시신경병증·양안 시신경위축’을 진단받았다. 이후 인사혁신처에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직무수행에 따른 질병이 아니란 이유로 불승인 처분이 내려졌다.

A씨는 “약 20년간 환경오염물질 배출사업장 지도점검 업무 등을 하면서 독성 화학물질과 비산먼지에 장기간 노출됐다”며 2020년 10월 소송을 냈다. 4개월 동안 과로하고 민원으로 누적된 스트레스도 발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A씨는 악취 등 환경오염물질과 관련한 민원이 접수되면 퇴근 이후나 주말에도 해당 사업장을 방문해 점검해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맡았던 사업장에는 메탄올·벤젠·황산 같은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업체가 다수였다.

특히 2017년 6월부터는 조류인플루엔자(AI) ‘심각’ 단계가 발령되면서 3교대로 근무했다. 약 12주간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는 휴일 없이 연속 근무했다. 이 기간 초과근무 시간만 월평균 75시간에 달했다.

‘악성 민원’도 영향을 미쳤다. 주민들은 환경오염물질로 인한 두통과 어지러움 증상을 호소했다. 그 과정에서 욕설과 폭언도 쏟아졌다. 주민 한 명은 야간이나 주말에도 A씨에게 전화해 “10분 안에 안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 죽이겠다”며 협박했다.

“유해물질 노출 불안, 극심한 스트레스 작용”

법원은 A씨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시신경염’이 발병했다고 판단했다. 시신경염은 시신경에 염증이 생겨 신경섬유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돼 시력저하·시야장애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질환을 말한다. 재판부는 “과로와 스트레스가 안질환 발생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은 의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라며 “과로나 스트레스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환경오염물질에 노출된다는 정신적 부담감도 컸을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다수의 민원인이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악취가 심하다며 다양한 신체증상을 호소하며 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해당 사업장을 방문해 환경오염물질 배출 여부를 확인하고 포집까지 직접 수행했던 원고로서는 확인되지 않은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돼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상시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저질환인 대상포진과 다발신경병증이 시신경염의 원인이라는 공단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과로와 스트레스가 중첩돼 면역력이 저하되며 시신경염의 위험성을 증가시켰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원고의 다른 기존 질환으로 시신경염이 발병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가 시신경염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취지의 법원 감정의 소견도 뒷받침됐다.

A씨를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유해물질로 인해 발병한 상병 특성상 재해자가 유해물질의 성분과 노출량 등을 증명해야 하는데,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해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하지만 만성과로와 극심한 업무스트레스가 인정돼 상병과 공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됐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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