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문식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강문식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5월1일은 세계노동절이다. 대부분 올해 세계노동절을 133주년으로 칭하지만, 민주노총이 개최하는 세계노동절 대회명은 ‘2023 세계노동절대회’로 정해졌다. 그 연유를 알아보니 주년 계산에 이견 때문이라고 한다. 벌써 10년 전의 결정이라고 하니 지금껏 몰랐던 나의 무심함을 먼저 반성한다.

이견을 제기하는 쪽은 세계노동절을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는 날로 해석한다. 1886년부터 셈하면 올해는 137주년이 된다. 1886년 메이데이를 ‘기념’했던 1890년 5월1일 국제 집회를 기점으로 삼더라도 올해는 134차 세계노동절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혼란이 있으니 아예 주년을 빼고 연도로만 표기하자고 주장했다.

사실관계부터 확인하자. 세계노동절의 기원은 제2인터내셔널이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맞아 1889년 7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모든 국가와 모든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일 시행을 요구하는 대규모 국제 시위를 조직한다. … 1890년 5월1일에…”

제2인터내셔널의 결의는 1886년의 미국 노동운동을 기리는 기념일을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매년 5월1일에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거리로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1890년의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 5월1일은 휴일이 아니었고, 반사회주의법이 존재하던 독일처럼 노동자의 정치적 행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나라도 있었다. 각국의 노동자들이 한날한시에 단결된 행동에 나선다는 경험도, 보장도 없었다. 4년 전 미국의 경험을 볼 때 실패하면 누군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1890년 5월1일 세계 각국에서 집회가 성공적으로 열렸다. 당시 노동운동가들이 얼마나 가슴 벅찼을지 떠올려보라. 제2인터내셔널은 이듬해 개최된 두 번째 총회에서 1890년의 국제 시위를 계승하는 세계노동절 대회를 매년 5월1일 개최하기로 정했다.

여기까지는 워낙 많은 자료가 남아 있어 논란 소지가 없다. 그러함에도 논쟁이 제기되는 것은 결국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다. 1886년 메이데이 투쟁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거나, ‘1890년 5월1일’이 이미 기념일이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기도 하거니와 ‘세계노동절’의 의미를 ‘노동절’로 축소시킨다. 그 쟁점은 1890년에도 존재했다. 미국의 메이데이 파업을 결정했던 미국노동연맹은 자신들이 ‘1890년 5월1일’과 연결되는 일을 피하고자 9월 첫째주 월요일을 노동절(Labor day)로 ‘기념’하자고 청원했다. 민주노총이 1886년과 1890년 사이에서 동요하게 된 것은 당시의 쟁점과도 상통한다. 아예 주년을 빼자는 주장은 역사를 현재와 분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노동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노동계급 운동(세계노동절)은 1890년에 시작했기 때문에 100주년은 1990년에 기념해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세계노동절은 세계 노동자가 민족과 국경을 넘어 단결의 날, 1890년 5월1일을 계승하는 날이다. 올해 5월1일은 133주년 세계노동절이다.

명칭보다 중요한 쟁점은 어떤 정신을 계승할 것인지다. 각국에서 보호주의, 이민자 혐오가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 가맹·산하조직에서도 “외국인 불법 고용”을 단속하자는 기자회견과 집회가 개최됐다. 이민자가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혐오와 비난은 1886년의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메이데이는 그에 맞선 이주노동자의 투쟁이었다. 헤이마켓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노동운동 지도자 7명 중 5명이 독일 이민자였다. “우리를 처형해 노동운동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목을 가지고 가라”고 외친 스피이스(Spies)도 그중 한 명이다. 이주민을 향한 혐오를 멈추고 그들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악법을 철폐하는 것이 이들을 기리는 자세일 것이다. 시절이 혼란해도 노동운동이 견지할 입장은 1890년이나 지금이나 명료하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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