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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하반신이 마비돼 요양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한 탄광노동자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법원은 기존 산재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 극단적 선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취지의 조정권고를 내렸다.

소변줄 차고 휠체어 신세, 우울증 동반

1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탄광노동자 A(사망 당시 68세)씨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취지로 조정을 권고했다. ‘조정권고’는 법원이 행정처분 감경의 여지가 있을 때 행정부서에 직권취소 및 재처분을 권고하고, 소송을 낸 원고에게는 소송 취하를 권고하는 것을 말한다.

A씨는 1985년 7월 충남 보령의 한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던 중 돌에 맞아 하반신 마비가 왔다. 당시 나이는 33세에 불과했다. 이때부터 끝없는 요양이 시작됐다. 장해등급 1급을 판정받은 A씨는 약 3년(1천112일)간 입원치료와 30여년(1만1천180일)의 통원치료를 받았다. 하반신 마비 탓에 휠체어 신세를 져야만 했다. 방광과 요로감염도 재발했다. 소변줄로 인해 체온이 37도까지 오르는 등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역할을 못 한다는 자괴감은 A씨를 극단으로 내몰았다. 유족측에 따르면 그는 서독 파견 광부로 일하며 서독 전문대학에서 기계조립 기능사를 취득해 귀국 후 직원훈련원 교사를 희망했다. 하지만 사고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자 무력감에 시달렸다.

급기야 심한 우울증세가 나타났다. 2011년 호흡곤란이 왔고, 2014년에는 중증의 우울에피소드로 30여 차례 치료받아야 했다. A씨는 의사에게 “죽고 싶은 마음에 빨랫줄에 목 매달았다” “숨쉬기가 차갑고 힘들다” 등을 호소했다. 팔다리가 마비되는 느낌과 함께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약을 먹고도 하루 3시간만 잘 정도의 극심한 불면증을 겪었다.

유서 남기고 극단 선택 “너무 아프고 고통”

특히 의지하던 산재 동료 4명의 연이은 극단적 선택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A씨 아내는 “동료의 사망으로 남편이 불안감을 호소하는 일이 잦아졌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아파서 못 살겠다. 다리를 차라리 잘라 버렸으면 좋겠다” 등 고통을 자주 호소했다고 한다.

급기야 두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정신과를 다녔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다” “너희들한테 미안하다” 등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2020년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A씨 아내의 유족급여 신청을 공단은 거부했다. 산재를 입은 지 35년이 지나 극단적 선택과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A씨 아내는 2021년 5월 소송을 냈다. 유족측은 “망인은 하반신 마비 등으로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하며 소변줄을 상시 착용해 최소한의 신체기능마저 유지하기 어려웠다”며 “망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공단의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한 차례 변론을 진행한 후 조정을 권고했다. 선고 전에 공단 스스로 처분을 취소하라는 주문이다. A씨 아내는 남편 사망 3년 만에서야 산재를 인정받았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산재사고로 30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장해 1급 상태로 요양하던 근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안에서 진료기록·유서 내용·요양 기간 중 에피소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재사고와 자살 사이의 인과성을 인정받은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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