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지역 사회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미다. 가정 안에서만 수행하던 돌봄노동을 사회가 조금씩 분담하게 되면서 학교는 교육을 넘어 돌봄·복지의 역할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아이의 교육은 담임교사만이 담당하는 게 아니다. <매일노동뉴스>는 아이의 시간과 밥을 책임지는 돌봄전담사, 조리실무사에 이어 교육복지사와 전문상담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위기학생을 발견하고 지원하며 학생의 삶의 질을 책임지는 또 다른 ‘선생님’들이다. <편집자>

유진아(51) 교육복지사. <어고은 기자>
▲ 유진아(51) 교육복지사. <어고은 기자>

서울 동대문구 한 중학교에서 일하는 교육복지사 유진아(51)씨는 지난달 학교를 옮긴 뒤 ‘동네 지도’를 그리는 데 열중하고 있다. 교육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에게 지원이 가능한 기관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학교와 협력할 수 있는 기관뿐만 아니라 후미진 골목도 찾아다닐 예정이다. 학생들이 주로 어디서 담배를 피우고, 어디서 사복으로 갈아입는지 같은 정보를 수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사회복지사 역할을 하는 교육복지사들은 저소득층을 비롯한 교육 취약계층 학생을 발견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서울에서는 ‘지역사회교육전문가’로 불린다.

20년 경력의 유진아씨도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는 ‘신입’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그간 여러 학교를 옮겨다녔지만 서울 노원구안에서만 움직였다. 동네 곳곳을 들여다보는 깨알 같은 노하우는 이번 학교로 발령나면서 다시 새로이 쌓아야 한다. 유씨의 업무는 크게 사례관리와 프로그램 기획·운영 두 축으로 구성된다. 유씨는 “엑셀처럼 수식을 넣어서 답을 구하는 것도,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며 “학생들의 특성이나 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정방문도 교육복지사 업무 중 하나다. 학교 안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학생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유씨는 긴급 상황이 발생해 3월 첫째주부터 가정방문을 다녀와야 했다. 지난해 유씨의 가정방문 횟수는 총 49건이었다. 학기 중 일주일에 한 번꼴로 가정방문을 한 셈이다.

교육복지사 1천700여명, 교육공무직의 1%뿐
사업대상 학교도 교육복지사 배치 36.5%에 그쳐

교육복지사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학교로 지정된 곳에 배치된다. 해당 사업은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소득불평등과 빈곤 대물림을 막기 위해 교육에 복지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2003년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으로 출발했다. 교육부 훈령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관리·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사업대상 학생은 교육급여 수급권자, 차상위계층의 자녀, 한부모가족·다문화가족의 자녀 등이다.

교육복지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교육복지사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하지만 전국에 교육복지사는 1천700여명에 불과하다. 서울시교육청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규모를 보면 2016년 934개교에서 2022년 1천74개교로 늘어났다. 그런데 교육복지사는 1천713명으로 전체 교육공무직의 1%에 불과하다(교육부 2021년). 2020년에 비해 고작 34명 늘어났다.

사업 학교로 지정해도 교육복지사를 배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2021년 시·도교육청별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선정 학교수 및 학생수’ 현황을 보면 사업 선정 학교 4천208곳 중 교육복지사가 배치된 학교는 1천539곳인 36.5% 수준이었다. 교육복지사가 배치된 학교의 대상학생수는 17만3천935명이었는데, 교육복지사 1명이 지나치게 많은 학생수를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씨는 “어떤 학교는 대상 학생수가 40명인데, 어떤 학교는 80명이다. 담임교사 추천까지 받으면 더 늘어난다”며 “이전 학교에서는 120명을 혼자 담당해야 했다”고 전했다.

초등학생 27% ‘코로나 블루’
상담사, 학부모·담임교사와 협업 중요

교육복지사가 학생의 환경적 영역에 개입해 학업 유지에 필요한 자원개발과 지역사회와의 연계에 초점을 둔다면, 교육공무직 전문상담사는 학생들의 정서와 심리 상담, 진로지도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전문상담사 김모선(57)씨가 일하는 부산 해운대구 한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약 580명이다. 김씨가 이전에 근무하던 초등학교에 비해 학생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학생수 감소가 곧 상담 업무량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코로나19 전후로 학생들이 학교생활과 교우관계에 적응하는 데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2월 전국 초·중·고 학생 34만1천4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의 27%는 코로나19 발생 이전보다 우울해졌다고 답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보다 불안해졌다는 응답도 26.3%였다.

김씨는 일 대 일로 이뤄지는 예약상담과 10~15명으로 구성된 집단상담 같은 ‘고정업무’ 외에도 돌발상황에 따른 긴급상담도 주 2~3회꼴로 하고 있다. 상담 대상은 학생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부모나 담임교사도 포함된다. 한 아이의 문제 원인을 파악하고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담임교사와 학부모와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 김모선(57) 전문상담사. <당사자 제공>
▲ 김모선(57) 전문상담사. <당사자 제공>

19년 일해도 월급 300만원, 같은 업무에도 수당 차별
“중요한 일하는 만큼 권한과 책임도 분배해야”

교육복지사와 전문상담사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직종이지만 처우는 열악하다. 유진아씨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 시작된 2003년부터 학교에서 교육복지사로 일했다. 20년 경력의 유씨가 한 달에 받는 월급은 세전 300만원 안팎이다.

‘전문’ 상담사 김모선씨도 월급은 세전 255만원 수준이다. 상담교사와의 차별도 문제다. 김씨는 “상담교사와 동일 직종이고 동일 업무를 하고 있는데도 교사는 상담수당을 받지만 전문상담사는 상담수당이 없다”고 전했다.

‘학교비정규직’ ‘학교회계직원’으로 불렸던 교육공무직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 고용불안 문제가 해소됐지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 ‘2등 시민’이라는 신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교육의 범위는 넓어지고 교육공무직의 역할은 확대됐지만 여전히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치부되는데 일종의 신분 의식이 작동하는 것”이라며 “일각에서는 교육공무직에 대해 ‘책임도 안 지면서 권리만 주장하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싶어 해도) 공식적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이어 “시험은 여러 채용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며 “시험 통과 여부가 아닌 하는 일을 기준으로 대우를 해 주고 책임과 권한도 어느 정도 분배해야 한다. 그래야 공공성 실현이나 대국민 서비스의 질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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