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의 아내 권금희씨가 사고 1주기인 21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5개월 된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홍준표 기자>

“남편 사고 이후 매일 ‘감옥살이’하듯 살고 있어요. 그런데 장세욱 동국제강 대표이사(부회장)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요. 안전수칙을 전혀 지키지 않아 사람이 죽었습니다. ‘슬프구나’ ‘안됐구나’ 하고 생각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에요. 동국제강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대기업 첫 사례가 됐으면 합니다.”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의 아내 권금희씨는 사고가 난 지 꼭 1년이 된 21일 <매일노동뉴스>에 이같이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권씨는 “장 대표가 징역 20년 정도는 선고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대범죄와 결합한 살인죄에 선고되는 형량 수준이다.

권씨는 “원청 대표가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도 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려면 엄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 해결촉구 지원모임 등 시민·사회단체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 마련한 1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했다.

사고 11개월 만에 ‘퇴임한 공동대표만 송치’

1년이 흘렀지만 권씨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지난해 3월21일 아침은 여느 때와 같았다. 이동우씨는 “다녀올게”라며 집을 나섰다. 출근 중 전화로 아내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권씨는 임신 석 달째라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오전 11시께 남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씨가 응급실에 있다며 빨리 오라고 했다. 권씨는 즉시 달려갔지만 남편은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 있었다. 세상이 무너졌다. 권씨는 “평소에는 잘 다녀오라고 뽀뽀해 주는데 그날따라 해 주지 않은 것이 자꾸 생각난다”며 흐느꼈다.

‘안전불감증’이 일으킨 사고였다. 이씨는 하청인 창우이엠씨 소속 동료 2명과 함께 천장크레인에서 브레이크를 교체하던 중 크레인이 작동해 안전벨트에 몸이 감겼다. 안전조치와 관리감독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의 현장조사 결과 크레인 전원이 차단되지 않았다. 크레인 상부에 ‘신호수’도 배치되지 않았다. 결국 관리감독자가 운전하라는 신호를 줘 크레인이 움직였고, 안전고리를 어깨에 고정해 작업하던 이씨는 그대로 안전벨트에 감겼다. 현장에 원청 관리자는 없었다.

동국제강의 해명은 전무했다. 그러자 유족은 지난해 4월19일 상경해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회사에 △장세욱 대표의 공개 사과 △사고조사보고서·재발방지 대책 제공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사측의 협상 번복 끝에 사고 88일 만인 지난해 6월16일 최종 합의했다. 동국제강 홈페이지에 일주일간 사과문이 게시됐다. 재발방지 대책 수립도 약속했다.

하지만 수사는 답보 상태다. 사고 11개월 만인 지난달 14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김연극 전 공동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송치했다. 동국제강 포항공장장과 하청 대표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장 대표는 제외됐다. 노동청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 지휘에 따른 조치로 확인됐다. 노동청은 지난해 3~5월께 장세욱·김연극 공동대표를 불러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세욱 대표 법정 세워 만나고 싶어요”

유족측은 지난해 12월 대검찰청에 수사 촉구 입장문을 전달하고 지난달 장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장 대표가 최고경영책임자(CEO)로 최종 결정권이 있는데도 검찰이 수사를 소홀히 했다는 취지다. 장 대표는 9.43%의 지분을 보유한 동국제강의 2대 주주다. 유족측은 지난 9일 대구지검 포항지청에 기소를 촉구하는 등 행동을 이어 가고 있다.

검찰 태도가 미온적이라고 유족측은 비판한다. 권씨는 “검사는 유족과 면담할 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만 했다”며 “최근 내려갔을 때도 검사가 열흘간 출장을 갔다고 만남을 피했다”고 지적했다. 장 대표 역시 사고 이후 한 번도 유족과 만나지 않았다. 입건된 김연극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말 퇴임했다. 이와 관련해 권씨는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남편 사망 8일 만에 김 전 대표가 왔었는데, 회사가 당시 사태를 수습하지 못해 사태를 키운 책임을 물은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전했다.

장 대표가 법정에 설 때까지 싸우겠다는 권씨는 “장 대표가 기소돼 법정에 출석하면 그제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동국제강을 위해 일했는데 당신의 직원이 아닌 것이냐” “법정에서 책임이 없다고 하면 대표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냐”고 묻고 싶다고 한다. 무엇보다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쳐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의 아내 권금희씨가 사고 1주기인 21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씨의 아내 권금희씨가 사고 1주기인 21일 오후 서울 중구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꼬리 자르기식 수사, 법 취지 외면해”

검찰을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권씨는 이날 추모문화제에서 “진짜 사장 장세욱 대표를 거론하지도 않은 검찰이 본분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며 “바지사장에게 책임을 묻고 종잇장처럼 가벼운 처벌로 끝내려는 윤석열 정부의 검사들은 이제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 역시 비판했다. 그는 “한 번의 안전점검만 실천하면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죽지 않을 텐데 처벌은 너무 약하다”며 “경영책임자의 책임범위가 모호하다는 재계 주장을 그대로 받아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진짜 사장인 장 대표를 빼고 김 전 대표를 기소한 것은 속임수”라며 “혹시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기조에 힘입어 처벌을 면책하려는 숨은 의도라면 아예 꿈도 꾸지 말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유족을 지원한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이동우 노동자의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안전을 무시한 경영책임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원모임 등은 “월급사장만 경영책임자로 송치한 것은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식 수사로 검찰이 대기업 최고경영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의혹이 짙다”며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외면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검찰에 장 대표 고소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로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아들에게 전할 얘기 “끝까지 포기 안 했단다”

권씨는 이날 아들 이주환군과 함께 추모제에 왔다. 사고 이후 만삭인 몸을 이끌고 농성했던 권씨의 아들은 어느덧 태어난 지 5개월이 됐다. 8년 만에 어렵게 가진 아이였다. 옹알이를 시작한 아들은 아빠를 쏙 빼닮았다고 한다. 그는 “아들이 크면 아빠가 성실히 일하다가 억울한 사고를 당했다고 알려주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책임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고 했다. “주환아. 아빠는 너의 뛰는 숨소리를 듣고 울었단다. 네가 뱃속에 있을 때 아빠의 억울함을 알리겠다고 다짐했어. 엄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임자들에게) 벌을 주려고 노력했어. 이게 아빠가 없는 자리에서 네게 해 줄 수 있는 일이었어. 두 번 다시 아빠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일하다가 죽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게 네가 사회에 봉사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