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트 라핀 국제공공노련(PSI) 아태지역 사무총장(오른쪽)과 애니 헤론 아태지역 집행위 공동의장이 8일 오전 서울 영등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정부의 노동 탄압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국제 노동계가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국제법과 국제노동기구(ILO)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란 얘기다. 노조에 대한 공격은 공공부문 서비스를 훼손해 국가의 골격을 해할 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한다고 비판했다.

국제공공노련(PSI) 아시아태평양지역 집행위원회 회의를 위해 지난 6일 한국을 찾은 케이트 라핀 공공국제노련 아태지역 사무총장은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같이 강조했다. 간담회에는 애니 해론 국제공공노련 아태지역 집행위원회 공동의장이 함께했다.

라핀 사무총장은 “국제공공노련은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권을 위축하는 한국 정부 정책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본다”며 “한국 정부가 ILO 회원국이 돼 87호와 98호 기본협약을 비준하는 데 30년이 넘게 걸렸는데, 위반까지는 1년이 채 걸리지 않는 현실을 보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정한 규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노조를 운영해야 한다는 국제법상의 취지가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라핀 사무총장은 “노조 운영은 사용자나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며 “그러나 최근 한국 노조를 사용자단체로 규정하고, 특수고용직의 노동권을 부정할 뿐 아니라 단체협약을 불법화하고 정당한 파업권 행사를 범죄시하는 등 국제법이 정한 자주적 노조 운영 권리에 심각하게 도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부유할수록 시민·노동자 권리 확대하는 게 국제법”

- 한국 정부가 최근 최대 주당 69시간 일을 시키는 법을 만들었다.
라핀 사무총장
: ILO 협약 위반일 뿐 아니라 유엔(UN)의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도 위반했다. 이런 원칙들에 따르면 국가가 부유해지면 부유해질수록 더 많은 권리를 시민과 노동자에 주도록 하고 있다. 불가역성도 강조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대중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 시민의 이동권을 책임지는 교통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을 하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보건의료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산성이 향상하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더 공정하게 노동자의 몫을 보장해야 하는데 오로지 수익창출에만 기여하게 하고 있다. 전 세계적 추세는 노동시간 증가가 아니라 단축이다.

애니 헤론 공동의장 : 국제적으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노동자는 일을 위해 일만을 반복해야 하는가.

- 한국 정부는 최근 노조에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한다.
라핀
: 한국 정부가 이른바 국제적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노조에 대한 부당한 지배개입으로서, 마찬가지로 ILO 협약을 위반한다. 한국 정부가 스스로 비준한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 스스로 정한 규율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노조에 대한 회계자료 요구를 기업에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거대기업의 부패가 더욱 심각하다. 이런 부분을 보완할 부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국제적 기준상 노조활동에 부당한 지배개입을 할 수 없다.

단체교섭권도 마찬가지다. 원청과 하청노동자의 교섭을 막는 것은 ILO 협약 위반이며 유엔의 지속가능 개발 목표와 국제인권규범을 다 위반하는 주장이다. 하청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등은 모두 단체교섭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노동자다.

회계자료 요구, 노조 자주권 훼손해
추가적 탄압 발생 우려 커

- 한국 정부의 반노조 정책 중 주요하게 염려하는 대목이 있나.
라핀
: 모든 부분에서 걱정스럽다. 특히 (회계자료 제출 요구 같은) 노조의 자주권을 훼손하는 데 우려가 크다. 이를 기반으로 추가적인 탄압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특징적으로 사정기관을 동원한 노조 공격이 있었다. 위험하다. 필리핀에서는 노조 활동가가 적절한 기소나 법적 절차 없이 살해당한 일이 비일비재 했다. 경찰이나 사정기관의 이런 행위는 사용자에게 노조를 공격해도 된다는 신호를 준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라핀
: 노조에 대한 탄압은 국제법 위반일 뿐 아니라 대중과 공공재, 그리고 국가의 미래를 공격하는 것이다. 국제공공노련은 한국 노조와 연대했고 국제적으로 한국의 노동탄압이 주목받도록 노력하고 있다. 공동으로 한국 정부를 ILO에 제소하기도 했다. 만약 한국 정부가 국제 기준이 뭔지 궁금하다면 항상 대화는 열려 있다. 국제노동기준은 존재한다. 그에 응한다면 한국이 공평하고 진보적 국가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반대로 가고 있다. 이에 대해 지적할 수밖에 없다. 노조를 약화하려는 시도는 기업에 권력을 부여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한다. 결국 노동자뿐 아니라 대중의 미래를 해한다.

- 그럼에도 노동탄압에 여론의 지지가 상승하는 모습도 있었다.
라핀
: 보수정권이 지지율 반등을 노리고 노조를 때리는 것은 흔한 전술이다. 내 모국인 호주에서도 보수당 집권 시절 한국 정부처럼 자료 요청을 했다. 이런 전술의 목적은 특별 결의문에서 강조했듯이 정부가 초래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려는 시도다. 호주에서의 정부 시도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고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 노동권 진전이 있었다. 한국 시민도 정부의 이런 전술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 윤석열 정부는 집권 후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민영화라는 비판이 있다.
라핀
: 보건의료 서비스를 비롯해 에너지와 상수도 같은 공공재는 공공의 손에 있을 때 시민의 공평한 접근권을 보장한다. 명확한 사실이다. 민영화를 하면 노동자의 권리가 약화한다. 임금을 삭감하고 더 많은 노동시간을 강제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한다. 이 결과 서비스의 절대적인 질도 하락한다. 민간의 목적은 공공서비스를 잘 전달하는 게 아니라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비용이 높아져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촉진한다. 민영화는 실패했다. 많은 비용을 들여 재공영화하는 시도가 많다. 한국의 상황이 매우 우려된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노조·노동운동 탄압, 공익에 해를 끼치는 행위

- 기후위기 속에서 노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라핀
: 강력한 노조가 정의롭고 공평한 전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강력한 노조가 국가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공중보건을 강화하고 사회 불평등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노조와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은 공익에 해를 끼치는 행위다. 기후위기는 기업이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기업은 기후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다. 과소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주도하는 기후위기 대응은 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재앙적이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공공성을 강화하고 노조가 참여한 가운데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력 등을 해야 한다.

- 한국의 일부 노조는 노조의 정치적 개입에 대해 비판적이다.
라핀
: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라는 의미다. 공공서비스를 보호하는 활동, 이를 테면 공공의료를 보호하고 국민연금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무상교육을 만드는 활동에서 어떻게 정치활동을 수반하지 않을 수 있나. 그런 이야기는 시민에게 정치활동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 한국 노동계는 정부의 노동탄압에 맞서 투쟁을 강화하고 있다.
라핀
: 총파업 결정은 노조의 당연하고 정당한 권리다. 집단적 행동을 조직하는 것은 중요할 뿐 아니라 정당하다. 광범위한 노동자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 정부가 노동시간을 확대하고 단협을 범죄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오히려 노조가 파업을 조직할 역량이 없어진 곳이 많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많은 위협에도 노동권을 방어하기 위해 결의 있게 투쟁하는 노조다.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노동운동은 중요하다. 용기 있게 투쟁하는 게 다른 지역 노동자에게도 영감을 준다. 이런 활동이 매우 중요하고, 계속 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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