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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소 상실’로 조기에 폐경해 생식기능을 상실했는데도 별도의 구체적인 법률상 기준이 없어 낮은 장해등급을 받았던 여성노동자에게 법원이 등급을 상향해 판결했다. 남성이 생식기능을 상실했을 때 부여되는 ‘장해등급 7급’과 동일하게 해석했다. 조기 폐경 장해와 관련한 첫 사법부 판단이다.

10년간 반도체공장 근무에 ‘조기 폐경’
‘생식기능 상실’ 불인정 판정에 소송

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단독(최선재 판사)은 LG전자 반도체 노동자 A(40)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장해등급결정 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심만 2년8개월이 걸렸다. 공단은 지난 3일 항소했다.

A씨는 2003년부터 LG전자 평택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2012년 4월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렸다. 법원에서 산재가 인정돼 요양하다가 재차 ‘조기난소부전’과 ‘비장 결손’ 등을 진단받았다. ‘조기난소부전’은 35세 이전에 폐경과 유사하게 난소의 기능이 정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폐경과 난포 고갈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질병에 대해 추가상병이 승인돼 2017년 7월까지 요양했다.

이후 A씨는 장해급여를 청구했지만 거절됐다. 공단은 “생식능력에 뚜렷한 제한이 남은 사람에 해당한다”면서도 쉬운 일밖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해등급 8급11호(비장 또는 한쪽의 신장을 잃은 사람)로 결정했다. ‘비장 결손’만 장해로 인정된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령의 별표6은 ‘장해등급 기준’을 1~14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장해가 심할수록 등급이 높아진다.

조기난소부전 장해 불인정에 A씨는 2020년 6월 소송을 제기했다. A씨측은 “여성이 생식기능을 상실한 경우 신체의 악영향이 남성보다 더 큰데도 별도의 장해등급 기준이 없어 입법이 미비하다”고 주장했다. 남성의 경우 ‘양쪽 고환을 잃은 경우’ 장해등급 7급이 인정된다. 현재 산재보험법 시행령은 ‘생식기에 뚜렷한 장해가 남은 사람’을 성별과 무관하게 9급14호로 인정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생식기능에 장해가 생겨도 남성보다 낮은 등급이 매겨지는 셈이다.

이에 A씨측은 ‘장해등급 기준’에 규정되지 않은 장해는 비슷한 장해등급으로 결정한다는 시행령(53조3항)을 근거로 7급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아가 9급 장해만 인정되더라도 비장 결손과 중복된 장해를 입었으므로 등급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행령은 13급 이상 장해가 두 개 이상 있으면 1개 등급 상향 조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법원 “조기 폐경도 생식능력 상실로 봐야”
“남성과 장해등급 다를 정도로 큰 차이 없어”

법원은 공단 판정을 뒤집고 A씨 손을 들어줬다. 남성이 고환을 잃은 경우와 비슷한 장해에 해당한다며 장해등급 7급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법령은 ‘난소 상실’에 관해 별도 규정을 두고 있지 않지만, 남성의 ‘고환’에 대응하는 여성 생식기관이 ‘난소’라는 점에서 비슷한 장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고환’의 경우 ‘생식능력 상실’ 측면을 중요하게 고려해 7급을 부여했으므로 ‘난소’도 마찬가지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고환·난소의 경우 생식기능이 상실된 경우라면 물리적 상실이지, 기능적 상실인지에 따라 장해등급이 달리 평가될 정도로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한의료감정학회가 2007년 연구보고서를 통해 ‘고환 또는 난소의 물리적 상실이나 기능적 상실을 모두 동등한 장해등급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개정하는 안’을 제시한 부분도 근거가 됐다.

‘난소 결손’은 9급에 해당한다는 법원 감정의 소견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노동상실 측면에서 7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 근거한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다만 A씨 질병은 같은 복부장기 장해로서 두 개의 장해가 복합적으로 발생한 장애가 아니라고 봤다.

A씨를 대리한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장해등급 기준이 6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남성과 외형상 드러나는 장해에 집중됐다”며 “특히 남성과 달리 여성의 생식기능과 관련해선 기능적 손실을 장해등급에 반영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번 판결이 장해등급 기준의 문제점을 확인시켜 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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