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주 60시간이 넘게 근무하다가 간암에 걸려 숨진 경찰의 공무상 재해를 법원이 인정했다. 해당 경찰은 한 달에 최장 283시간(평일 하루 약 13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권고한 대로 노동시간 유연성이 확대되면 이 같은 사례가 늘어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암 진단 직전 12주간 1주 63시간 근무
노동부 ‘만성 과로’ 기준 초과

5일 법조계에 따르면 경찰관 A씨(사망 당시 40세)의 아내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순직유족급여 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인사처는 1심에 불복해 지난달 항소했다.

A씨는 2005년 임용 이후 11년여간 근무하던 중 2016년 B형 간염과 간경변증에 걸렸다. 치료를 하는 중 2019년 10월 간암을 진단받았다. 결국 그는 6개월 만인 2020년 1월 숨지고 말았다.

생전 A씨의 업무시간은 상상을 초월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팽목항에서 수습작업을 하면서 한 달에 368시간을 근무했다. 평일 기준으로 하루 약 17시간을 일한 셈이다. 2016년 2~5월에도 강력 사건을 맡으며 한 달 최대 72시간을 초과근무했다.

지방선거가 있던 2018년에도 선거전담반에 투입돼 일상적 야근이 이어졌다. 동료는 “A씨는 집에 들어가는 시간보다 사무실에서 자는 시간이 많았다”며 “초과근무시간 제한이 있어 실제 근무시간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진술했다.

강력범죄를 수사한 2019년에는 업무량이 폭증했다. 4교대로 근무하며 월 255~283시간을 일했다. 휴일을 뺀 나머지는 하루 11.5~12.8시간씩 근무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간암 진단 직전에도 열흘간 105시간을 일터에서 보냈다.

상병 진단 전 12주간 1주 평균 업무시간은 약 63시간으로 확인됐다. 발병 직전 12주간 1주 근로시간이 평균 60시간을 초과했을 때 ‘만성 과로’로 판단하는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을 넘어선 것이다. 결국 A씨는 간암이 진단 두 달 만에 2배 이상 급속도로 진행했다.

법원 “B형 간염 정상 관리, 과로로 악화”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 건강해도 죽음 문턱 내몰아”

인사처는 과로와 상병의 인과관계가 밝혀진 바 없다며 유족급여를 불승인했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고인은 어려운 업무를 담당하면서 집에 가지 않고 생활하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무리하게 근무했다”며 “B형 간염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과중한 업무수행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B형 간염을 적절히 관리했는데도 간암이 급격히 악화한 이유는 ‘장시간 노동’에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내하기 어려운 정도의 업무부담과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업무상 과로가 간암 발병에 미치는 영향이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더라도, 과로로 면역기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가 B형 간염과 중첩 작용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결론 내렸다.

전문가들은 ‘노동시간 유연화’가 현실화하면 A씨 같은 사례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주 단위’에서 최대 ‘연 단위’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적어도 69시간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석 달간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거나 육체노동이나 교대제 업무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노출되면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은 높아진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A씨 사건은 불규칙한 장시간 노동이 지병이 있지만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많은 이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는 몰아서 일하더라도 나중에 쉬면 된다는 논리인데, 인간의 삶과 신체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가능한 주장이다. 결국 불규칙한 장시간 노동으로 귀결된다”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공무원들 역시 불규칙한 노동시간을 버티기 힘든데 심지어 모든 기업의 노동시간을 뒤흔든다면 너무나 부당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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