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산재사망 사고만인율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담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처벌과 규제 대신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구축해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를 엄중히 처벌하고 규제했는지 평가는 둘째치더라도, 사업장에서 스스로 안전에 대한 규율을 만들고 예방하는 체계가 정착될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주목할 점과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
▲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

정확히 34년 전, 필자가 자동차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첫 번째 주의 사항은 후진할 때 뒤에 어린이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운전석에 앉아서 뒤를 돌아보아도 어린이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차량에 후방 센서와 카메라가 달려, 운전자가 후방을 눈으로 볼 수 있고 물체 감지를 소리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후방의 어린이를 다치게 하면 운전자에 과실이 명확하다.

그런데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후진하는 기계차량에 부딪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래서 만들어 놓은 규칙이 후방에 신호수(유도자)를 세우라는 것이다. 요즘은 특수 작업조건을 제외하면 기계차량에도 후방카메라를 달아서 후방의 모든 상황을 운전자가 직접 통제할 수 있다. 만일 후방카메라와 센서를 부착한 상태에서도 후진 사망사고가 나면 운전자에게, 후방카메라나 센서를 부착하지 않았다면 사업주에 책임이 명확하다. 모든 기계차량에 반드시 신호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에서 현장 감독을 나오면 신호수 미확보는 무조건 행정처분 대상이다. 이것이 작업현장의 다양함과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규 중심 행정의 한계다.

50년 전 유럽도 그랬다. 많은 자세한 법적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발생했다. 급격하게 기술이 발전하면서 예기치 못한 위험이 발생하는데도 예방조치는 법률 규정에 머물렀다. 산업발달이 미흡하고 사고가 아주 많은 산업의 초기 단계에서는 타율 중심의 규제가 적절하고 재해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처럼 산업이 성숙단계에 들어선 한국에는 더 이상 맞는 현실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영국이 먼저 도입하고 유럽연합이 따라 도입한, 자율 규제방식인 위험성평가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도입된 위험성평가는 가장 중요한 원칙을 빼고 기존 법규의 곁가지로 들어와 현장 작동성이 떨어졌다.

위험성평가의 첫째 핵심은 위험의 책임, 즉 사고의 책임은 사업주에 있다는 것이다. 사고가 나면 일단 책임은 사업주에 있고 사업주는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사고가 불가항력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책임을 진다(법적 처벌)는 원칙이다. 두 번째는 위험을 제거하는 방법은 사업주의 재량에 맡긴다는 것이다. 지금의 복잡한 법규를 지키지 않더라도, 자신의 사업장에 맞는 예방전략을 수립하고 그대로 지켜야 한다. 당연히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해서 그대로 수행했더라면 중대사고는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사업주는 불가항력적인 사고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고 이것이 확인되면 면책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구시대적, 복잡한 산업안전보건규칙을 지켜야만 하고, 위험성평가는 부가적으로 해보라는 수준이다. 감독을 나오면 여전히 본질과는 벗어난 수백, 수천 개의 규정 미준수만 지적하고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번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기존 법규 의무 준수는 최소화하고, 자기 규율 예방체계를 마련한다는 데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이제까지의 자율안전이 실패한 이유는 명확하다. 자율안전은 사업주에게 달콤하게 들린다. 내가 알아서 잘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우리 사업장에 맞게 예방계획을 세워 사고를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았다. 자율이라는 명제 뒤에 효율적 구매라는 더 큰 전략이 숨어있다. 많은 대기업에서 안전부서가 자율안전을 강조해도 저가구매를 선호하는 구매부서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중소기업은 자율안전이라는 개념조차 없다. 이들에게 자율은 안전에 대한 방기와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견적서를 보면서 무조건 싼 것(서비스)을 구매하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성공하려면 자기규율 예방체계라는 사업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업장 안전보건을 위해 최소한의 규정은 자율로 선택하되, 그 방식은 사전에 계획(위험성평가)하여 실행하고, 사고가 발생한 경우 노동부가 사고원인을 증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주가 사고의 불가피했음을 증명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소돼 처벌받는 방식으로 법이 개정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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