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월드컵은 언제나 주류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림자가 짙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월드컵은 유독 그렇다. 예선 기간 독일·덴마크·노르웨이 등의 적지 않은 현역 선수들이 카타르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이뤄진 노동권 침해에 깊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경기장 안에서 공개적인 규탄 퍼포먼스를 벌인 바 있다. 바로 카타르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안의 심각성이 알려진 것은 오래됐다. 2013년 여름, 카타르 월드컵 건설 현장에서 수십 명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6월4일부터 8월8일까지 두 달 간 네팔 출신의 젊은 이주노동자만 44명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당시 적지 않은 네팔인들은 “우리는 떠나고 싶지만 회사가 허락해 주지 않는다”며 강제노동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카타르 통계청에 따르면 카타르엔 29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카타르 시민권자는 33만명에 불과하고, 인도(70만명)나 네팔(40만명), 방글라데시(40만명) 이주노동자들이 훨씬 많다. 이들은 브로커를 통해 이주노동을 왔다가 불투명한 계약관계와 임금체불 등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실상 강제노동에 시달려 왔다.

사실 카타르 월드컵 건설 과정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강제노동, 중간 수탈 문제 등에 대해선 무수히 많은 비판과 시정 요구가 있었다. 일찍이 국제노총(ITUC)은 2014년 3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2010년 말부터 2013년 말까지 3년간 총 1천239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으며, “지금의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을 경우 매주 12명, 매년 600여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향후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50만여명의 노동자들이 이주해 올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소 4천명이 산재로 사망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카타르 정부의 의뢰로 조사 업무를 맡은 DLA 파이퍼(Piper) 로펌 역시 국제노총과 비슷하게 추정하고,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의 경우 약 1천80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일련의 비판에 대응해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의 리더 제프 블라터는 “광범위한 이주노동자 학대를 용납할 수 없다”며 “하루 속히 공정한 노동조건이 도입돼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악명 높은 뇌물 수령자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실제로 피파는 카타르 월드컵 보이콧이나 엄정한 감시·감독, 즉각적인 사망자 조사 등 어느 것도 실천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비난 여론에 압박감을 느낀 카타르 당국은 노동안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카타르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관계 법령을 개정했다. 2017년 이주노동자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받아 온 출국 비자제도를 폐지했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월 1천리얄(37만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걸프만 국가들에 만연한 카팔라(kafala) 제도를 폐지했다. 우리로 따지면 고용허가제와 유사한데, 고용주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노예 상태로 전락시킨다고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노동법 개정 이후에도 정부는 관리·감독에 무관심했고, 고용주에 의한 체류비자 취소나 열악한 노동조건 강요는 비일비재했다.

결과적으로 카타르 정부의 조치들은 문제 해결에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이슈화시키는 데 가장 큰 노력을 펼친 가디언은 2021년 2월 분석 보도를 통해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및 기반시설 건설이 이뤄진 2011년부터 2020년 10년 동안 최소 6천75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인도(2천711명), 네팔(1천641명), 방글라데시(1천18명), 파키스탄(824명), 스리랑카(557명) 순이었다. 카타르 정부가 파악한 사망 원인 중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연사(인도 출신 80%, 네팔 출신 48%)였는데, 25~35세의 젊은 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심혈관 이상’이나 ‘호흡기 질환’으로 죽은 것을 ‘자연사’라고 명명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 2019년 4월 의학전문지 지에 발표된 기상학자와 심장내과 전문의들의 공동연구 논문 ‘카타르의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열스트레스가 심장질환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카타르 당국이 ‘자연사’로 분류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사망은 열사병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살인적인 노동 현장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외치며 싸운 노동자들도 있었다. 올해 3월에는 경기장 건설 시공사인 한 건설사가 수개월에 걸쳐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시위가 일었다. 8월에도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임금체불에 맞서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카타르 정부는 이들 중 일부를 체포해 강제 추방해 버렸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카타르 월드컵 관련 노동 현장에서 임금체불 신고건수만 3만4천425건에 달한다.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타르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엄격한 와하비즘(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적힌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수니파 이념.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의 근원이라고 지목받음) 국가다. 카타르 정부는 성소수자들을 구금하고 있으며,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결혼 외의 성관계에 대해 최대 징역 7년형을 선고한다. 카타르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현재 카타르 월드컵 대사를 맡고 있는 칼리드 살만은 “동성애는 정신적 손상”이라고 발언해 뭇매를 받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전 프리미어리그 축구선수 토마스 히츨슈페르거는 월드컵 보이콧을 적극 주장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레온 고레츠카, 조슈아 키미히, 토니 크로스 등 현역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이런 행동에 동참하고 있다.

일찍이 독일 대표팀은 국가대표 경기가 있을 때 카타르 월드컵에 항의 퍼포먼스를 펼쳐왔다. 덴마크,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벨기에, 호주 등 9개국 대표팀이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무지개 로고 완장을 착용하고 출전할 예정이다. 덴마크의 경우 아예 “모든 사람을 위한 인권”이라는 메시지가 적힌 유니폼을 입으려 시도하기도 했는데, 불행히도 피파측이 불허했다. 피파의 잔니 인판티노 회장과 파트마 사무라 사무총장은 “축구는 이념·정치 싸움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축구에 집중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을 무시하고, 노동 착취로 죽어 간 수천 명의 피로 지어진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하는 선수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적이지 않은가?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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