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최근 5년 동안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요양급여 관련 소송은 3천여건이다. 그중에는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노동자의 ‘산재 승인’을 취소해 달라는 기업들의 뻔뻔한 소송도 적지 않다. 산재를 일으킨 기업들은 “소속 근로자가 아니다”거나 “업무로 인한 질병 또는 사고가 아니다”며 소송을 제기하지만 최근 5년간 확정된 판결(85건) 가운데 단 3건을 빼면 모두 패소했다. 공단의 산재 승인 문턱을 높인 탓에 법원에서 산재 불승인 판정이 뒤집혀 노동자가 승소한 경우는 많아도 산재 승인 판정이 취소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산재 기업들이 패소할 확률이 높은데도 산재취소 소송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학적 노무관리로 인한 정신질환”
유성기업 ‘불법 쟁의행위 때문’이라며 6건 소송

10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요양급여 관련 소송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공단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은 모두 2천952건이다. 소송의 96.1%는 개인이 제기한 소송이다. 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이나 산재 연장 또는 추가 산재에 대한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이 기간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이 제기한 소송도 각각 2건, 112건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제기한 소송의 취지는 주로 공단의 산재 승인을 취소하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노조파괴 시나리오’로 악명을 떨친 유성기업이 제기한 소송이 6건으로 가장 많다. 유성기업은 2014년부터 적응장애, 중증의 우울병, 불안장애 같은 정신질환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노동자 6명의 판정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산재가 아니니 요양급여를 주지 말라는 취지다.

유성기업은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이 “불법적 노조활동 내지 쟁의행위와 관련된 것일 뿐 업무로 인해 발병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회사의 노조탄압과 징계에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사건이 2건 발생하고 집단 정신질환 사태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고용노동부는 임시건강진단 실시 명령을 내렸지만 회사는 산재취소 소송을 이어 갔다. 그 결과 6건의 소송 모두 유성기업이 패소했다. 유성기업이 대법원까지 끌고 가 진 사건이 3건, 1심 패소 후 유성기업이 소를 취하한 사건이 3건이다.

법원은 “사업주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없는 불법적 노조활동 또는 사용자와 대립관계인 쟁의행위 단계에서 발생한 재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유성기업 정신질환 재해자)가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정상적 업무 수행 중 경험한 노사·노노 갈등과 회사의 부당한 경제적 압박, 강화된 감시와 통제 때문”이라며 산재로 판단했다.

15년간 카지노 기계 300대 걸레질한 노동자
팔꿈치 주관절 파열은 업무 아니라 나이 때문?

유성기업 다음으로 산재취소 소송을 많이 낸 곳은 강원랜드 자회사인 강원남부주민㈜이다. 강원남부주민은 강원랜드 카지노와 호텔 청소·방역업무를 맡고 있는데 청소노동자 4명의 팔꿈치 주관절 부분 파열과 팔목의 총신전건염에 대한 산재 승인을 취소하고 요양급여를 주지 말라는 소송을 4건 제기했다. 이들은 대부분 2001년 입사해 2015년 퇴직할 당시까지 15년 가까이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24시간 손걸레로 호텔 유리창에 손님의 지문이 보이지 않도록 닦고, 바닥 대리석의 광을 내는 일을 했다. 특히 밤 11시부터 새벽 7시까지 밤샘근무를 할 때면 카지노 300대를 30~40분간 걸레로 닦아야 했는데 탈수기에서 걸레를 짤 시간이 없어 양동이로 걸레를 빨았다.

그런데도 회사는 이들이 “업무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퇴행성 질환이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강원남부주민에서 근로자 건강상담 처리 일지를 보면 손목 통증과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상담과 처치를 받은 청소노동자가 적지 않고 법원 진료기록감정촉탁의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할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며 공단 판정이 옳다고 판결했다.

어디서 감히 산재신청을…
‘괘씸죄’로 취소 소송 내는 사업주

과로나 심각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뇌심혈관계질환에 걸린 노동자에게 오히려 ‘괘씸죄’를 씌워 산재취소 소송을 내는 사업주도 적지 않다. 서울 강동구 대중목욕탕 사업주는 1주일에 70시간을 수건·가운 세탁과 청소업무를 한 노동자가 뇌출혈로 쓰러져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자 취소 소송을 냈다. 사업주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 사이 재해자가 이발사나 세신사들과 함께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며 일을 했고,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단순한 노무를 제공한 것이어서 과로가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사업장에 등록된 노동자는 재해자뿐이고 사업장에 24시간 머물며 세탁과 청소업무 전반을 도맡아 했다”며 업무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창원의 공기정화장치 제조업체인 D사는 정년퇴직 후 촉탁직으로 중량물 조립작업을 발병 전 3개월간 주당 60시간 이상 일한 여성노동자의 뇌출혈 산재 인정에 불복해 산재취소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이 회사는 “동료 근로자와 비교할 때 과중하다고 볼 수 없고 퇴근 후 자택에서 발생했고 평소 고혈압을 앓고 있어 산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과로 인정기준에 해당하고 혈압이 다소 높지만 정상범위였으며, 휴일근무 직후 자택에서 쓰러져 업무와 시간적으로 연장선상에 있다”고 회사 주장을 기각했다.

부산의 병원 비뇨기과 진료부장으로 일하던 A씨는 뇌출혈로 오른쪽 반마비와 언어장애가 발생해 산재를 신청했다. 공단은 산재로 인정했지만 해당 병원은 “별다른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없었다”며 “산재가 아니다”고 소송을 냈다. A씨는 주 6일 40시간 근무했지만 병원의 경영이 악화하면서 월급을 받기 위해 병원 대신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그 이자까지 물었고, 의료용품도 병원에서 구매해 주지 않아 본인이 직접 사 진료를 봤다. 또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고혈압이 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산재 은폐하려는 건설회사
‘묻지마 산재취소 소송’

현대건설도 지난 5년간 3건의 산재취소 소송을 냈는데 패소하거나 소를 취하했다. 근로복지공단이 25년차 형틀목수의 오른쪽 무릎 연골 파열을 산재로 인정했는데 현대건설은 “55세로 퇴행성질환이 180센티미터, 85킬로그램의 거구로 인해 자연악화한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재해자가 재해발생을 입증하지 못하고 육중한 몸 때문에 악화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공단이 온정주의적 조치로 산재 승인을 했다”며 현대건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 법원은 “형틀목수 업무 가운데 쪼그려 앉아 일하는 과정이 많다”며 “퇴행성 변화가 있는 상태에서 작은 충격으로 연골판이 찢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산재취소 소송을 낸 기업 중에는 건설사가 절반이 넘는다. 공공 공사 입찰에서 산재발생시 감점이 되고 개별실적요율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판결과 무관하게 일단 취소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윤건영 의원은 “기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한 비율은 3.5% 수준으로, 전체 요양급여 관련 소송에서 공단이 패소한 비율의 4분의 1에 불과하다”며 “산재 인정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데도, 이미 승인된 산재 인정마저 취소해 달라고 회사가 소송을 걸어 괴롭히는 행태가 통계로도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회사는 업무상 질병이 아니라고 잡아떼기만 하고, 왜 산재인지 입증하는 것은 아픈 노동자의 몫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심지어 패소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소송을 거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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