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같은 부대의 병사가 사고로 숨지자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육군 장교가 대법원에서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사망한 장교 A씨의 배우자가 경기북부보훈지청을 상대로 낸 보훈보상대상자 요건 비해당 결정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병사 목소리 환청 시달리다 공상 전역
보훈보상 비대상 결정에 유족 소송

1999년 소위로 임관한 A씨는 2001년 8월께 보병사단의 포대장으로 근무할 당시 부하 병사가 사망하는 사고를 겪었다. 병사는 쇠기둥을 절단하는 작업을 하다가 쇠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목숨을 잃었다.

그때부터 A씨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후 다른 부대로 옮겼지만, 월 최대 50시간의 초과근무와 보직 변경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누적됐다. 결국 이듬해 7월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사망한 병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등 환청에 시달렸다.

A씨는 약물을 복용하며 증세가 호전됐지만 2014년께부터 다시 불면증과 환청을 호소했다. 두 차례 입원해 치료받으며 조현병과 중증도의 우울병 에피소드 등의 진단이 내려졌다. 군은 A씨의 질병을 공무상병으로 인정했다.

2015년 공상으로 전역한 A씨는 2년 뒤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보훈심사위원회는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A씨의 아내는 “남편의 질병과 군 복무수행과는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2020년 7월 소송을 냈다. 1·2심은 “A씨의 상병이 군인으로서의 직무수행으로 인해 발병했거나 자연적인 경과 이상으로 악화했다고 볼 수 없다”며 A씨 아내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직무상 스트레스만 호소”
임관 이전 ‘건강’, 동료도 “책임감 강해”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공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A씨가 부하 병사의 사망 당시 근무를 바꿔 주지 못한 것에 관한 죄책감, 근무지 이동 적응의 어려움 등 직무상 스트레스만 호소했을 뿐 다른 요인들에 관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봤다.

실제 A씨는 임관 이전에는 정신질환 치료이력이 없었고, 군 동료들도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히 근무했다는 취지의 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1심 법원 감정의 역시 부하 병사의 사망 이후 환청을 겪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소견을 냈다. 조현병 진단 경위서도 이를 뒷받침했다. 대법원은 “사망한 병사에 관한 환청 등 사망사고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조현병 진단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망인은 직무상 겪은 특별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업무상 부담과 긴장이 감내하기 어려운 외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해 상병의 발병·악화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할 여지가 많다”고 판시했다. 환경적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에도 조현병이 발병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A씨 유족을 대리한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대법원은 직무수행과의 인과관계 판단에 있어 그동안 확립된 법리에 비춰 구체적 사정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며 “늦게나마 망인과 유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판결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