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오라클 유튜브채널 갈무리

법원이 자택에서 대기하다 고객사를 방문해 PC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한 엔지니어들에게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자택 대기시간과 이동시간 모두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자택에서 대기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24시간 출동’에 2시간 이내 방문 지침
오후 6시 넘겨 방문 수리, 수당 지급 소송

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정봉기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한국오라클의 전·현직 직원 A씨 등 11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한국오라클 엔지니어들은 평소에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대기하다가 고객사에 설치된 장비에 장애가 발생하면 직접 방문해 유지보수를 담당했다. 이들은 24시간 출동에 장애 신고 2시간 이내 방문한다고 정한 회사 방침에 따라 움직였다. 엔지니어들은 회사 앱에 방문시간과 예상소요시간 등을 입력했고, 담당자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정이 비어 있는 엔지니어를 추천받았다.

이에 따라 엔지니어들은 소정근로시간(오전 9시~오후 6시)을 넘겨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자 A씨 등은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실제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며 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또 휴일에도 순번에 따른 당직근무를 서거나 방문 수리를 하는 등 평일과 같은 업무를 했으므로 수당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엔지니어가 방문한 시각부터 업무를 종료한 시각을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수리시간을 제외한 대기시간과 교육시간은 근로시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직근무 역시 ‘단속적 업무’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법원 “자택 대기도 실질적 지휘·감독”
“원격 통제, 근로시간 반영에 의미”

법원은 엔지니어의 평일 오후 6시 이후 근무와 휴일근로에 대해 회사가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평일 오전 9시 이후 자택에서 대기한 시간도 실질적인 지휘·감독이 미치는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엔지니어들이 평일 오전 9시부터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리며 대기하면서 2시간 이내 고객사에 방문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부분이 근거가 됐다. 회사는 작업건수와 거절 건수, 수리 소요시간을 인사평가 요소로 삼았고 엔지니어가 배정을 거부하면 구체적인 소명을 요구했다.

2015년 이후 엔지니어의 근무공간이 제공되지 않은 부분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회사가 엔지니어의 자택을 대기장소로 지정하고 있는 이상 자택 역시 근무지에 해당한다”며 “장애 신고시 2시간 이내 방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이동한 시간도 원고들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시간이 아니므로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했다. 교육과 회의 시간 모두 근로시간으로 인정했다.

다만 ‘당직근무’에 대한 수당 지급 의무는 없다고 봤다. 당직근무시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했더라도 접수 건수가 적어 주간업무보다 노동강도가 낮다는 이유에서다. 사측의 ‘소멸시효 항변’도 재판부가 인정하면서 인용금액은 낮아졌다. A씨 등은 2016년 1월에서 2018년 5월까지의 수당을 2020년 1월 청구했다. 재판부는 “소멸시효 기산일은 임금 정기지급일(매달 15일)”이라며 2017년 11월14일까지의 수당은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조계는 재택근무에 대한 실질적 지휘·통제가 인정된 데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A씨 등을 대리한 김하경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이 사건은 노동자들이 100% 외근하면서 회사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격 통제를 받는 사례였다”며 “코로나19 이후 원격으로 통제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근로시간에 대한 다툼 역시 늘어났는데, 법원에서 소정근로시간 전체가 회사의 실질적인 지휘·통제를 받는 근로시간으로 인정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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