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전 세계 고용은 1990년대부터 꾸준하게 줄어들고 있고, 피고용자 내부의 양극화는 더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소득분배율 하락과 중위소득 하락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경제사학자 아론 베나나브(Aaron Benanav)는 이와 같은 고용감소의 원인이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생산능력 과잉에 따른 탈공업화에 있다고 본다. 지난 수십년, 자본은 이윤추구를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공급사슬을 재편해 왔고, 노동의 힘은 약화해 왔다.

실제 선진국들의 노조 조직률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1990년 37.5%에 달했던 독일의 노조 조직률은 2019년 16.3%까지 떨어졌고, 호주는 30년 사이 40.5%에서 14.3%로 급락했다. 미국·영국·일본 모두 예외가 아니다. 한데 예외적으로 한국은 2010년 9.8%까지 하락했다가 10년 만인 2020년 14.2%로 크게 상승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 상승은 무권리 상태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 인식, 노조의 전략조직화 사업이 보태진 결과다. 지난봄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적용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했던 화물노동자,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에 맞서 파업했던 택배노동자, 건설업 도급구조에서 고통받던 건설노동자 등은 노조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특수고용·비정규 노동자들이다. 공공부문과 서비스업의 여성·비정규 노동자들이나 자동차·전자산업 노동자들 역시 무권리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조로 단결하고 있다. 이런 노조에는 그간 노동시장 밑단으로 분류되던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높다.

물론 노조 조직률 상승 하나가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긴 어렵다. 노동운동 차원에서는 어떤 노조가 될지, 하후상박의 원칙을 견지해 임금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지, 업종과 일터에서 더 많은 동료를 조직할 전망을 갖는지 등 여러 요소가 함께 고려돼야 하고, 정책 차원에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 7월 윤석열 정부는 전문가들로 이뤄진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구성했다. 의견수렴을 거쳐 노동시간 개편과 임금체계 개편 관련 법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당사자인 노동조합을 ‘패싱’하고 정부 입맛대로 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간 노동개혁 담론의 흐름을 돌아볼 때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선 전후 윤석열 정부는 연공급 임금체계가 청년 신규채용이나 중장년 고용안정을 저해하고 임금격차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진단하고, 공정과 상생을 위해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령 공공기관별로 직무와 연관성이 있는 임금을 확대하도록 경영평가를 통해 강제하고, 직무별 임금공시 및 컨설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은 노동시장 내 불평등을 축소하는 게 아니라, 생산성과 임금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에 있다. 기업 내에서 직군·직급·직무에 따라 임금을 세분화하고 격차를 키워 노동자 간 경쟁을 강화하고, 사용자의 임금결정 권한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자본의 힘을 강화하고, 노동의 힘을 약화시킬 것이다. 안 그래도 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 안전운임제 파업이나 대우조선 사내하청 점거농성 같은 사안에서 쟁위행위 제약을 주창하는 등 자신이 추구하는 노사관계에 대해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원하는 답을 정해 놓고, 명분을 쌓기 위해 ‘연구회’란 형식을 만든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의당 대표 후보로 출마한 조성주씨는 공공부문 직무급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어차피 정의당이 조직 노동자로부터 표를 얻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진보정당 득표 전략의 핵심은 (노조로 조직되지 못한) 80%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 노동자를 무시하는 것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과연 직무급제 도입이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에게도 좋은 방식일까?

일단 직무급제는 성과급제 확대를 전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체계가 시급과 성과급으로 나눠져 있다고 할 때, 시급체계에서 임금인상이 억제되면 초과노동 경쟁으로 이어지고, 이는 추가 고용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반면 직무급제가 당연시되고 성과급의 부피가 확대되면 노동표준이 강화되고, 이는 노동 내부의 경쟁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서 노동표준 역시 자본가들이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기준 자체도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사장이나 관리자의 말을 잘 듣는 사람에겐 높은 점수가 부여되고,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에겐 낮은 점수가 부여된다. 직무급제로의 전환을 대안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노동-자본 관계를 무시할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는 노동에 대한 통제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만 높인다.

노동조합은 생활임금과 평등, 안정성을 원칙으로 삼아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체계나 노동 과정에 조금의 통제력이라도 가지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면 이는 당연한 과정이다. 반대로 기업들은 경쟁과 차별을 강화함으로써 유연성을 높이고, 나아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임금정책 개입을 시도한다. 그런 점에서 몇몇 정치인들이 공공부문 임금체계의 직무급제 전환을 내세우는 것은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주장이다. 지난 20년 사이 자본이 끊임없이 성과급 체계 확대를 시도해 온 맥락에서 이런 주장은 조직 노동자든 무노조 노동자든 모두의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직무급이 필요한 일터도 있다. 하지만 이를 전면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개인의 직무수행 능력이나 직무의 가치 등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해서 가격을 매긴단 말인가? 최고 관리자의 직무와 무기계약직 노동자 사이의 직무에는 정말 그만큼의 차이가 있는가? 어떤 일이 더 힘든가? 노조 없는 노동자 80~90%의 일터에 이를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면, 노조 없는 노동자들의 권리는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조성주씨의 주장은 보수언론들로부터는 “말 통하는 진보정치인”으로 칭찬받고 나름대로 흥행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선 노동권 후퇴에 기여할 공산만 크다. 문제는 그 화살이 그가 폄훼하는 ‘조직 노동’이 아니라, ‘미조직 노동’을 향한다는 사실이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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