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리찾기유니온은 14일 오전 서울 용산역 회의실에서 스포츠산업 ‘가짜 3.3 미디어데이’를 열었다. <어고은 기자>

“공채로 들어갔고 구단 지시에 따라 훈련·지도 외에도 사회공헌활동이나 홍보활동도 해야 했어요. 유스를 선택한 것 자체가 금전적인 것은 (포기하고) 선수를 육성하는 보람 때문에 한 건데 ‘프로선수 배출을 못 했다’는 둥 터무니없게 일을 그만두게 되니 속상하고 억울하죠.”

전남드래곤즈에서 6년간 감독으로 일하다 지난 1월 ‘해고’된 이재혁(49·가명)씨가 지난 14일 오후 중앙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 심문회의를 앞두고 한 말이다. 전남드래곤즈에서 프로 생활을 하기도 한 이씨는 2015년부터 감독으로 일했지만 갑작스럽게 계약이 종료됐고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이씨는 함께 일을 그만두게 된 코치 3명과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14일 오후 전남드래곤즈 감독·코치 4명이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에서 초심 유지(기각) 판정을 내렸다. 구체적인 판정 사유는 판정문이 나와야 확인할 수 있지만 전남지방노동위원회와 마찬가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코치 4명 한꺼번에 계약종료
‘축구대학’ 진행하고, 출근 인사 동원돼

프로축구 전남드래곤즈 유소년팀 감독·코치 4명은 올해 1월1일로 한꺼번에 계약이 종료됐다. 이들은 2015~2020년 사이 입사해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까지 구단에서 일했다. 1년 단위로 ‘훈련·지도 용역계약서’를 체결했다. 통상 계약 연장이 이뤄졌는데 갑작스럽게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통보를 받았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이들은 구단이 주관하는 주간·월간회의에 참여했고, 선수 영입·방출 등 대부분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 구단에 보고하고 승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유소년 지도 업무 외에도 구단의 지시에 따라 16주간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축구대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독서감상문을 작성해 밴드에 올리거나, 구단 홍보활동을 위해 포스코 광양제철소 정문 등에서 출근 인사에 동원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들이 체결한 용역계약서에는 용역 내용 조항에 “구단의 운영과 관련해 구단이 요구하는 업무”가, 이행 의무 조항에 “구단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이 포함돼 있다. 업무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노위 심문회의에서는 감독·코치의 재량권이 어느 정도인지가 주된 쟁점이 됐다. 신청인측은 학년별 정원(TO)를 비롯한 구단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고, 업무보고를 해야 하는 만큼 상당한 정도의 독자적 재량권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구단측은 상대적으로 투자가 적은 유소년팀은 선수 방출이 자유로워 감독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했고, 업무보고는 계약 이행 과정에서 정보를 공유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노동청 부산아이파크·수원FC 유소년 지도자 근로자성 인정

신청인측을 대리한 하은성 공인노무사(권리찾기유니온)는 “사측이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한 적이 없고 지도자 재량권하에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한 점을 받아들인 것 같다”며 “그런데 근로자여도 재량권하에 업무를 수행하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이 불필요하거나 원천적으로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근로자성 부정의 주된 근거가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 노무사는 “최근 새롭게 등장한 노동형태, 여러 직종을 고려했을 때 관계적 종속성, 경제적 종속성 문제가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인적 종속성보다는 경제적 종속성으로 판단 기준이 옮겨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미 노동청에서는 유소년팀 지도자가 근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부산북부지청은 지난 6월30일 부산아이파크 축구단을 운영하는 HDC스포츠측에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을 위반했다며 유소년 감독·코치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시정지시를 내렸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도 2019년 8월 수원FC에 유소년팀 감독·코치에게 퇴직금, 연차 미사용수당을 지급하라고 시정지시를 했다. 중노위는 지난 7월19일 e스포츠 ‘LoL’ 프로게임단 DRX 감독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해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사측이 훈련 과정이나 전술 선택에 재량이 있어 프리랜서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배척한 것이다.

▲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4일 오후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전남드래곤즈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 심문회의를 참관했다. <어고은 기자>
▲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4일 오후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전남드래곤즈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 심문회의를 참관했다. <어고은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