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짧은 추석 연휴가 끝났다. 간만의 명절 연휴가 주말과 겹쳐 더욱 짧게만 느껴졌다. 더군다나 필자는 연휴 내내 촉각을 곤두세웠다. 연휴 직전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뿐 아니라 해당 소식을 전달받은 많은 이들이 추석을 적지 않은 긴장 상태(?)에서 보냈을 것이다.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은 시행령 개정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포함할 것인지를 예단할 수는 없으나, 개악의 성격을 띨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줄곧 재계의 이해를 적극 대변할 것을 자임하며, 가장 먼저 손볼 대상으로 손꼽아 왔다. 이미 언론에 공개돼 논란이 된 바와 같이 소관부처도 아닌 기획재정부가 직접 나서 의뢰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노동부에 시행령 개정안을 주문했다. 이런 국기문란(?) 행태만으로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바라보는 윤석열 정부의 시각과 개악 의지는 명확해 보인다.

그동안 재계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악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전 여론형성을 줄기차게 해 왔다. 기업집단만을 대상으로 한 편향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꾸준히 발표하며 여론을 호도하고자 해 왔다. “기업 81.2%가 ‘개정이 필요하다’”(한국경총 4월), “기업 80.2%가 ‘경영에 부담이 된다’”(대한상의 5월), “기업 71.5%가 ‘연내 개정이 필요하다’”(한국산업연합포럼 5월) 같은 조사결과로 지속적인 공세를 펼쳐 왔다.

그러나 국민의 인식은 어떨까? 한 경제일간지가 추석 직전 실시한 ‘추석맞이 경제인식 대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산업안전을 위해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53.9%를 차지, 응답자의 절반을 훌쩍 넘었다. 그리고 24.8%는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78.7%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찬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일터에서 ‘더 이상 어떤 누구의 희생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대중의 엄중한 목소리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시행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기업에게 엄중한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묻기 위해 지금보다 엄격히 법제도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재계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느라 모른척 하거나, 어물쩡 외면해서는 안 될 국민들의 목소리가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일선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안전전문가들의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달 6일 학계·기업·기관·단체 등에 속한 안전관리자·안전공학자 등으로 구성된 한국안전학회도 중요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 성과 및 한계·안전공학적 관점’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하계 세미나에서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강조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에 관한 조치 책임은 최고경영자가 져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47.5%(47명)가 지목했다. 그 이유(중복선택 가능)는 44.3%(54명)가 ‘최고경영자에게 의무를 부여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 해야 할 가장 필요한 역할로는 41.5%(78명)가 ‘안전 확보를 위한 적극적 개선의견 제시’라고 꼽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38.6%(39명)가 ‘최소 1년은 두고 봐야 한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이 대형 로펌에 고액을 지불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실질적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로펌에서 컨설팅을 하게 되면 실질적 예방조치보다 형식적 문서작업에 치중하게 돼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이 되지 못함’이라는 답이 33.3%(72명)로 가장 많았다. 이렇듯 일선의 안전전문가들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일하는 사람과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형식적인 서류작업이 아닌 실질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 작동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최고경영자가 의무 이행의 주체가 돼야 하며, 이를 현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가 경합하고 있다. 문제는 애초에 중대재해처벌법이 국민대중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통해 제기된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채 편향된 재계의 소통창구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행정부의 태도가 아닌가 한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균형감각조차 상실해 버린다면 그 행정부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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