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플레이산업에서 인듐 순환.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이나 TV, 터치스크린의 액정디스플레이에는 희귀금속인 ‘인듐’이 들어간다. 인듐은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의 핵심 원천 소재로 꼽힌다. 하지만 국제암연구소(IARC)는 인듐을 폐암·부신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거나 의심스러운 ‘2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녹는 점이 낮은 인듐은 여러 차례 정제작업을 거치면서 ‘가루’로 바뀌는데 2000년 이후 일본과 미국, 대만에서 인듐에 노출된 노동자가 기흉, 간질성폐질환, 폐섬유화 같은 폐질환에 걸린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강국’ 한국에서도 ‘인듐 직업병’ 경고등이 켜졌다.

“3개월 일했는데 혈청 인듐 수치 10배 초과”

14일 반올림에 따르면 최근 대전에 있는 인듐주석산화물(ITO) 타깃 생산업체 A사 노동자 상당수가 혈청 중 인듐 수치가 정상범위(1.2)보다 3~10배 이상 높게 나오고 퇴직 후에도 수치가 떨어지지 않는 등 건강 이상 증상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수건강검진에서 혈청 인듐 수치가 1.2를 초과하거나 기침 같은 호흡기 장해 증상을 보이면 ‘직업병 요관찰자’나 ‘직업병 유소견자’로 판정한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는 “공장 대부분 노동자들이 혈청 인듐 수치가 1.2를 초과했고 불과 3개월 일했는데 수치가 18~19까지 나오고 인듐을 취급하지 않은 사무직 노동자에게서도 평균보다 3~4배 높은 혈청 인듐 수치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A사 노동자들은 회사에 정밀검진을 요구했지만 사측 관리자가 ‘3개월 후에는 인듐이 몸에서 다 빠져 나간다’며 묵살하자 반올림을 찾았다. 인듐 반감기가 3개월이라는 사측의 설명은 사실이 아니다. 국내에서 실시한 ‘난용성 인듐 화학물에 의한 폐질환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듐 반감기는 15년 정도로 추정된다.

인듐 주전자에 넣어 200도 넘는 통에 붓다 ‘화상’

반올림과 노동건강정책포럼은 A사 노동자 3명에 대해 폐기능검사와 고해상도 흉부 전산화단층촬영(HRCT) 등을 실시하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정부에서 인듐 취급 사업장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와 특수건강검진 현황 자료 등을 받아 분석했다.

그 결과 A사 노동자 3명은 혈청 인듐 수치가 정상보다 2.5~5배 이상 높았고 경미한 폐쇄성 폐기능 저하 소견을 보이는 등 건강 이상 증상을 확인됐다.

A사 노동자들은 분말 상태인 인듐과 주석을 녹여서 인듐주석산화물 덩어리로 만든 후 울퉁불퉁한 표면을 연마하거나 인듐을 녹인 것을 접착제 삼아 패널과 붙이는 작업을 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근 작업공정이 바뀌기 전까지 인듐을 주전자에 넣어 인덕션이나 가스렌지에서 끓여서 섭씨 200도가 넘는 통에 붓다가 인듐이 온몸에 튀어 자주 화상을 입었다. 또 인듐 찌꺼기를 모아 재탕, 삼탕하는 작업도 했는데 그때마다 역한 냄새가 심하게 났다고 한다. 연마과정에서는 직접 사포질을 하기도 하고 인듐 분진이 신발에 쌓일 정도로 무방비로 노출됐지만 방진마스크 등은 충분히 지급되지 않았다.

인듐 혈청 수치 높은 노동자 내쫓고
1년 계약직 노동자로 채워

이종란 노무사는 “제일 심각한 문제는 회사가 노동자를 내쫓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으려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혈청 인듐 수치가 높은 노동자들을 대전공장에서 출퇴근이 어려운 세종공장으로 발령 내면서 퇴사를 선택하는 노동자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회사는 인듐 노출을 줄이기 위한 설비투자 대신 퇴직하는 노동자의 빈자리를 계약직 노동자로 채웠다. 2020년까지 A사 대전공장은 전원 정규직이었는데 인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이 의무화된 지난해 이후에는 10명 중 8명이 계약직으로 바뀌었다. 이전에 없었던 사내하청업체까지 등장했다.

최민 직업환경의학과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이세미 직업환경의학과전공의(이화의료원 목동병원)에 따르면 지난해 인듐으로 특수건강검진을 받은 노동자는 6천796명이다. 이 가운데 혈청 인듐 수치의 정상범위를 초과하는 노동자는 234명(3.4%)이나 된다. 이미 2017년 국내에서도 인듐으로 인한 간질성 폐질환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 지난해에야 인듐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검진이 의무화된 점을 고려하면 인듐에 의한 직업병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날 오전 이수진 의원과 노동건강정책포럼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듐 취급 사업장 사례로 본 직업병 예방제도의 개선 과제’ 토론회를 열고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