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2017년과 대한항공 청소노동자 5명이 기화식 방역소독을 마친 항공기 청소에 투입됐다가 몇 분 뒤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보건진단명령 등에 따라 항공기 청소노동자에 대한 직업병 조사가 이뤄졌다. 항공기 살충소독을 위해 사용한 유해물질 피레트린계(pyrethriods) 델타메트린 중독으로 밝혀졌다.

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는 항공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살충소독제로 피레트린계를 권장한다. 그런데 살충소독제가 밀폐된 항공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실제 피레트린계 살충소독제로 항공기 승무원과 승객에 호흡기질환, 신경계질환, 피부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외국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항공기를 청소하는 노동자에 대한 살충소독제 연구·조사는 없었다. ‘청소업무’는 항공기에서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노동’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그림자노동 ‘방역·소독’

‘방역노동자 이학문씨 이야기’를 취재하는 중에도 이런 벽에 부딪혔다. 보건복지부가 방역소독에 대한 안전관리 업무를 관할하고 있지만 방역노동자 보호가 아닌 ‘공중위생’과 ‘감염병 예방’에 목적을 두고 있다.<본지 2022년 8월30일자 2면 “‘방역노동자 이학문씨 이야기’ 방역일 18년, 나의 뇌는 쪼그라들었다” 기사 참조>

바이러스나 세균 그리고 병균을 옮기는 쥐나 해충 피해에서 안전하려면 그것을 처리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소독업자는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8월 말 기준 지방행정 인허가 현황을 보면 소독업(전염병 및 각종 세균이나 유해 해충의 소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업소)으로 등록한 업체는 1만952곳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두 배 이상 늘었다. 대부분 종사자수가 1~5명 정도인 영세사업장이며, 매달 100~300곳이 폐업할 정도로 시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업체도 많다.

소독업으로 신고하려면 일정한 장비를 갖추고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처음에는 16시간 교육을 이수하고 3년 이내 8시간의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18년간 방역업무에 종사한 이학문씨는 “방역·방충 업무를 하면서 사용하는 약품의 성분도 몰랐고, 안전교육은 전혀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소독업체 관리는 기초자치단체에서 맡지만 정기적인 점검은 이뤄지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무자격 소독업체들이 난립하자 일부 지자체들이 자율점검을 실시했을 뿐이다. 소독업체 관계자는 “보건소에서 한 번씩 소독업체들을 점검하기도 하는데 인력이 제한돼 있다 보니 자세히 들여다 보지는 않는다”고 귀띔했다.

그나마 지자체와 보건소가 점검하는 것은 제대로 소독이 실시됐는지 여부다. 법령에 따른 소독 의무시설에 소독업체들이 어떤 약품을 사용해 어떤 방법으로 방역·소독을 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방역노동자의 작업환경이 안전한지를 살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하루 연속 4시간 이상 살포작업 금지
현실은 하루 10시간 장시간 노동

방역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역종사자가 되려면 받아야 하는 첫 16시간 교육(6개월 이내) 가운데 2시간은 안전교육이다. 한국방역협회와 안전보건공단이 만든 ‘소독실무 교재’에 따르면 약제 및 장비 위험성과 병원성 미생물 위험성을 고려해 충분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작업복과 모자, 보호안경, 마스크, 작업화 등 안전장비를 갖춰야 한다. 또 살포작업은 하루에 연속 4시간 이상 하지 않도록 하고 중독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독성이 강한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방역·소독업체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사업장에 비치해야 하고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검진 같은 직업병 예방 조치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학문씨는 오전 7시에 출근해 해가 질 무렵까지 10시간 이상 여러 곳을 돌며 어떤 화학물질을 함유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소독약을 살포했다. 특수건강검진도 받아본 적이 없다.

이학문씨는 자신의 뇌가 쪼그라드는 ‘다계통 위축증’의 원인이 살충제에 포함된 유해·독성 물질 때문이라고 의심한다. 유해한 생물을 죽이는 살충제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체에 영향이 없는 적은 양일지라도 장기간 연속해서 노출된다면 중독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방역협회가 펴낸 <소독실무 교재>에도 “방역업 등 직업적으로 장기간 약제와 접촉하는 사람은 만성독성에 의한 피해를 받을 염려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강성규 가천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과거에 해충·방역에 사용한 물질 중에는 중추신경계 영향을 주는 물질들이 포함돼 있어, 장기간 노출됐다면 중추·말초신경 손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0년 수입 원목·식물을 방역소독하는 업무를 하던 40대 노동자의 말초신경장애가 직업병으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 2016년에도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수입 과일을 방역·소독하는 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4명에게 집단으로 독성 뇌병증이 발병해 논란이 됐다. 이들 모두 소독약에 들어간 메틸브로마이드 중독으로 밝혀졌다. 병해충을 제거하려고 주로 훈증소독 과정에서 사용하는 메틸브로마이드는 독성이 강한 화학약품으로 중독되면 어지럼증, 두통, 구토, 시력장애, 손발 떨림, 경련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신경 독성에 의해 중추·말초신경 장애를 일으키고 호흡기 등 여러 신체 부위에 손상을 불러온다.

그런데 이들 사고는 ‘급성중독’으로 신경계 장애의 원인물질이 분명하다. 이학문씨처럼 장기간 노출되며 서서히 증상이 드러나는 ‘만성중독’과는 차이가 있다.

살생물제 승인은 환경부, 농약 관리는 농림부
방역노동자 직업병 예방은 ‘구멍’

방역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살충제와 소독약은 2018년까지 약사법상 ‘의약외품’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관리하다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관할 부처가 환경부로 바뀌었다. 현재는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화학제품안전법)에 따라 위해성 평가 등 안전기준을 통과해 승인받은 물질만 사용할 수 있다.

메틸브로마이드의 경우 고용노동부가 관리 대상 유해·위험물질로 지정해 취급 사업장에 대한 작업환경측정이나 특수건강진단 등 건강장해 예방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살충제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안전 사용기준을 마련하고 관리한다.

이나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화학물질연구센터장은 “살충제 같은 농약은 노동부 소관이 아니어서 농약과 관련한 안전보건지침도 많지 않고 (살충제를 다루는) 근로자에 대한 관리 주체도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바이오사이드(비농업용 약제·살생물제)의 경우 환경부에서 화학물질관리보다 엄격하게 하지만 직업적 측면에서 살충제 안전관리는 빠져 있다”고 말했다.

독성물질을 다루는 방역노동자에 대한 직업병 예방조치에 공백이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부가 방역·방제업무에 대한 적극적인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조기홍 산업보건환경연구원 실장은 “방역·소독업체 대부분 영세하다 보니 작업환경측정 같은 사업주의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정부의 관리·감독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방역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독성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큰 만큼 직업병 노출 여부를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적으로 방역·방제 노동자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과 건강검진을 실시하도록 해 직업병 예방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학문씨 산재신청을 대리하는 신주영 공인노무사(사람과산재)는 “이학문씨가 알고 있는 살충제는 ‘두어졸’같이 대부분 브랜드 이름으로 지금은 사라진 것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화학성분명을 알지 못해 질병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학문씨 사건은 우리의 생활공간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누군가 부당한 책임을 지도록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고 덧붙였다.

* <매일노동뉴스>와 사람과산재는 이학문씨와 같은 방역업종에서 일하다 신경계통질환을 앓는 분들의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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