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와 강은미·류호정·배진교·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2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케이블·통신 노동자 산업안전 보건 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정소희 기자>

케이블·통신을 설치·수리하는 노동자의 절반은 비나 눈이 와도 옥상이나 담벼락에 올라 작업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전과 추락의 위험이 있는 승주작업을 할 때에도 2인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고소작업대를 사용하는 비율도 낮았다. 원청 대기업이 작업 대부분을 외주화하면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위험의 외주화’에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다.

88.1% 전봇대서 홀로 작업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는 2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케이블·통신 노동자 산업안전 보건 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강은미·류호정·배진교·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노동환경연구소 ‘일과 건강’은 지난 4월6일부터 5월4일까지 본부 소속 7개 지부 조합원 1천37명을 대상으로 안전보건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들 중 76.2%는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LG헬로비전·HCN·딜라이브가 설치·수리 업무를 도급한 하청업체에 소속돼 있었다.

노동자들은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특히 설치·수리 노동자들의 추락사고 가능성이 높은데도 예방 조치는 미흡한 수준이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89조2항에 따르면 현장에서 크레인을 이용할 때 사업주는 작업자에게 신호할 사람을 정해야 한다. 186조4항4호에서는 작업감시자를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응답자 중 전신주에 오르는 승주작업에서 작업조 2인1조가 지켜진다고 답한 노동자는 12%에 불과했다. 신호수나 작업감시자 없이 혼자 일한다는 얘기다. 추락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고소작업대를 사용하는 비율도 35%에 머물렀다.

악천후에도 전봇대·옥상·난간·담벼락에 올라 고소작업을 진행하는 이들은 절반이 넘었다. 비가 와도 작업을 진행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49.6%였다. 55.2%는 눈이 와도 작업을 했다. 특히 걷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부는 옥상에서 작업을 한다고 답한 노동자도 50.1%였다.

SK브로드밴드 홈고객센터를 운영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례를 조사한 최진수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노동과인권)는 “SK브로드밴드 간접고용 노동자 실태를 조사해 보니 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은 법 시행규칙 등을 위반한 사례가 17개 항목이나 적발됐다”고 설명했다. 최 노무사는 “협력업체 모두 100명 이상 사업장이지만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설치돼 있지 않았고 산재 발생을 은폐한 사례도 보고됐다”며 “현장 노동자들은 질식·추락·감전·끼임·베임 같은 사고와 고객과 대면하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등 건강 유해요인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어 엄격한 산업안전보건 법령 준수가 요구되지만 위험이 외주화돼 협력업체 전반에 걸쳐 법 위반이 발견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규모조차 파악 안 되는 하청 노동자들

케이블·통신 설치·수리 노동자들은 고용규모조차 조사된 게 없다. 정부 산업재해 통계에서는 소규모 건설업 노동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정확한 산재 현황도 알 수 없다. 희망연대본부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고용노동부 관계자에게 케이블·통신 업계 전반에 대한 근로감독과 실태조사를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고용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산업안전 문제를 개선하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도급업체 경영자의 무책임과 업무를 외주화할 때 안전보건 규제를 지키기 위한 비용이 고려되지 않는 점 때문에 우리나라 하청·도급 노동자들의 산재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며 “통신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업무는 필수적인데다가 상시·지속업무이기 때문에 직접고용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최진수 노무사는 “협력업체들은 산재 자체를 재해로 인식하기보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재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산재도 원청에서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정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는 “다단계 하청의 중간착취가 없어지면 그 비용을 노동자 보호에 쓸 수 있다”며 “원청의 직접고용을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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