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37.8도. 사람의 체온이 아니다. 2022년 어느 초여름 저녁 쿠팡 물류센터 내 온도였다. 아직 열대야가 시작되기도 전인 7월 초 한밤중 온도였다.

여름이 시작되면 폭염에 대비하기 위한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나오지만, 더위가 그 기세를 꺾고 물러날즈음 폭염대책에 대한 논의도 사그라든다.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더위의 정도는 심해지지만, 더위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실외 작업 중심으로 실효성이 크지 않은 대책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고온에 의한 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보건 조치를 취하도록 정하고 있고,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은 ‘고열작업’에 대해 상세히 정하고 있다. 그런데 고열작업의 내용을 살펴보면 불을 이용해 물질을 녹이거나 열처리 작업을 하는 등, 고온의 물질을 다루거나 고열을 직접 다루는 작업에 한정돼 있다. 그 외에는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 장소’의 경우에만 필요한 조치를 정하고 있다. 물류센터의 경우와 같이 작업공간의 특성상 더위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경우는 다루고 있지 않다. ‘고열작업’의 분류에 ‘그밖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정한 장소’를 둬 노동부 장관이 일정한 장소를 규율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만, 규정만 존재할 뿐이다. 고온에 의한 장해방지를 위해 온도 및 습도 조절장치를 설치해야 하고 휴게시설을 설치하고 적절히 휴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 또한 ‘고열작업’의 경우에만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실내 장소에서의 폭염대책이 실효성을 갖고, 사업주로 하여금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노동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실내장소’에서의 폭염대책의 기준은 ‘폭염특보’ 발효를 전제로, 실내 온도가 높을 때 냉방장치를 설치하고 보냉장구를 지급하라는 것이다. 폭염특보는 하루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된다고 예상될 경우 발효되는데, 실외온도가 기준이다. 쿠팡 물류센터의 경우만 해도 알 수 있듯이, 실외는 30도 안팎으로 폭염특보가 발효되기 전이어도 실내가 38도를 웃도는 경우 노동부 대책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부대책만이 문제일까. 대규모 물류센터는 대부분 기존 창고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처음부터 창고용도로 만들어진 건물이어서 창문이 많지도 않고, 냉방과 공조시스템이 사람이 상존할 것을 전제로 갖춰져 있지도 않다. 그런 공간에서 하역장을 통해 바깥 공기는 그대로 유입되고, 실내 온도를 조절할 장치는 없는 상태가 된다. 물건을 옮기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여름에는 더위에, 겨울에는 추위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업체들은 에어컨을 설치하지도 않고, 그나마 에어컨을 설치한 휴게실은 작업공간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만들고, 얼음물과 아이스크림·냉풍기를 구비했다며 더위에 대한 대책을 다 마련했다고 한다. 실내 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온도계도 설치하지 않고, 심지어 노동자들이 직접 온도를 측정하려는 것을 제지하기도 한다.

여름에 땀 흘리지 않고 겨울에 추위에 떨지 않으며 일할 수 있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전제이다. 그런데 이 기본도 지키지 않으면서, 법 위반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 때문에 괜찮다면서 이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노동자들을 오히려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것처럼 매도하는 행위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더위가 물러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위에도 추위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는 변함이 없고, 길어지는 여름과 겨울을 매년 임시방편으로 보낼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이 폭염시 구체적인 조치를 담아야 하고, 물류센터 인허가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창고시설로 분류하지 않고 실제 건물의 용도를 반영해 냉난방설비를 갖추도록 관련 법령의 정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사업주는 일하는 공간의 온도를 실질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에어컨을 설치하고 휴게시간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휴게공간을 배치하는 등 얼마든지 자발적으로 더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노동부는 안전보건규칙에 따라 ‘고열작업’이 이뤄지는 장소에 ‘그밖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는 장소’의 폭을 넓게 정해, 더는 노동자들이 더위에 노출되어 건강을 해치고 목숨을 잃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금만 생각한다면, 구호뿐인 대책이 만능 대책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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