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설비공이 20년 넘게 작업하다가 발병한 추간판 탈출증(허리 디스크)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전기설비공은 어깨를 들거나 돌리는 운동에 영향을 주는 ‘회전근개’ 등의 힘줄이 파열되는 부상으로 요양하다가 허리 디스크까지 생겼다.

힘줄 파열에 재요양 중 허리디스크 발병

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임성민 판사)은 최근 전기설비공 A(55)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추가상병 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이 항소를 포기해 지난달 16일 1심이 확정됐다.

A씨는 1991년부터 약 20년간 전기설비공으로 근무하면서 천장 전등 작업과 해머 드릴, 전선관 매립, 자재 운반 업무 등을 해 왔다. 전기공사에 사용되는 무거운 자재를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을 반복했다. 건설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는 건물은 직접 삽이나 곡괭이를 이용해 땅을 파서 전선관을 묻었다.

장기간 반복해 전기공사를 수행한 A씨는 2017년 2월께 ‘어깨 회전근개 부분파열’을 진단받았다.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아 요양하던 중 2020년 2월 ‘좌측 주관절 부분파열과 외측 상과염’ 진단을 추가로 받았다. 외측 상과염은 팔꿈치를 과도하게 사용했을 때 생기는 질병이다. 이와 함께 ‘좌측 어깨 충돌증후군’ 등으로 재요양을 승인받아 지난해 3월까지 치료받았다.

그런데 재요양 기간에 ‘경추 추간판 탈출증’과 ‘손목 인대 파열’이 재차 발견됐다. A씨는 추가상병 승인을 요구했지만, 공단은 퇴행성 질환이라는 취지로 불승인 결정을 했다. 재심사 청구도 기각되자 A씨는 지난해 7월 소송을 냈다. 그는 “경추에 부담을 주는 업무를 수행했고, 기존 질환과 업무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질병이 악화했다”고 주장했다.

법원 “장기간 신체부담, 경추에 악영향”
동일 연령대보다 증상 악화 “업무 연관”

법원은 추가상병도 업무상 재해가 맞다며 공단의 판정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추가상병은 A씨의 장기간의 신체부담업무로 인해 발생했거나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업무상 재해 이후 추가로 발견돼 요양이 필요한 경우”라고 판시했다.

추간판 탈출증의 업무관련성을 50% 정도로 판단한 법원 감정의 소견을 참고했다. 감정의는 천장 전등 작업을 할 때 ‘두 팔을 올린 상태에서 목을 젖히는 자세’와 해머 드릴 작업시 ‘고개를 숙이거나 꺾은 상태에서 무거운 물체를 내리누르는 자세’ 등이 경추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 질환인 어깨와 팔꿈치 질환의 통증도 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도 참고자료가 됐다. 감정의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A씨와 비슷한 연령대(50~59세) 남성의 추간판 탈출증 유병률은 약 1.2%에 그쳤다. 재판부는 “A씨 상병의 정도는 어느 정도 자연경과 이상으로 진행된 수준으로 판단된다는 감정의 소견을 볼 때, 퇴행성 질환에 불과해 업무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가 수행한 작업 자체가 신체에 부담이 가중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A씨가 약 20년 이상 신체부담작업을 수행했다면 어깨와 주관절뿐만 아니라 경추에도 상당한 신체부담이 누적됐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며 “여기에 2015~2019년 경추의 염좌 및 긴장으로 총 4회에 걸쳐 치료받은 사실까지 더해 보면 업무가 상병의 발생 및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넉넉히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A씨를 대리한 이재원 변호사(법무법인 더보상)는 “A씨는 일용직으로 여러 사업장에서 단기간씩 근무하면서 퇴행성이 다소 결합돼 있었다”며 “그러나 업무로 인한 신체부담의 총기간이 길고 비슷한 연령대의 평균보다 상병이 악화했다면 업무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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