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마트산업노조

경북 포항에서 이마트 계산원으로 15년째 일한 박선영(52)씨는 10년 전만 해도 일요일 휴무는 하늘에 별따기 같았다. 당시 예비 머느리와의 첫 만남을 위해 일요일에 연차를 낸 박씨는 관리자에게서 “증빙서류를 제출하라”는 말을 들었다. 고객이 많아 매출이 높은 주말엔 연차를 내는 것조차 관리자 눈치를 봐야 했고 직원들 간 경쟁도 심했다. 박씨는 “동료들의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한 적도 있다”며 “어떤 사유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관리자의 판단을 받아야 했다”고 전했다.

‘월 2회 의무휴업’이 도입되고 나서부터는 일요일 휴무가 가뭄에 단비같았단다. 월 단위 스케줄 근무를 하는 계산원들은 일주일에 두 번을 쉬지만 휴무일은 대부분 평일이다. 3년 전쯤 박씨가 근무하는 점포에 ‘금토’휴무가 생겼지만 TO가 한 명뿐이어서 ‘내 차례’를 기다리려면 1년을 훌쩍 넘겨야 한다. 최근 의무휴업 폐지 관련 기사를 보면서 박씨는 단비 같은 주말이 사라질까 두렵다고 했다. 박씨는 “입점업체 점주나 협력업체·파견 직원들도 주말에 못 쉬기 때문에 걱정이 많다”며 “한 달에 네 번 중 두 번(일요일) 쉬는 게 많은 걸 바라는 거냐”고 말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10년 만에 폐지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마트노동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10대 안건 중 ‘톱3’를 선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윤석열 정부가 규제완화와 시장자율이라는 정책기조를 강조하고 있는 데다 투표에서 1위로 뽑힌 만큼 관련 논의가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전망이다. 마트노동자들은 남들 쉴 때 쉬지 못하기 때문에 휴식권·건강권 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 의무휴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돌아가면서 쉬면 되지 않냐고?
“현장 모르는 소리”

대통령실이 지난달 31일 자정까지 진행한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57만7천415개의 ‘좋아요’를 받아 10개 안건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대통령실은 당초 열흘간 투표로 상위 3개 안건을 정한 뒤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어뷰징 사태로 인해 우수 제안 3건을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골목상권 보호와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월 1~2회 의무휴업을 하고 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듬해인 2013년 개정된 법률에서 의무휴업일을 ‘매월 이틀’로, 영업시간 제한을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로 확대했다.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은 2018년 대형마트 7곳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이 난 바 있다.

국민제안 투표로 의무휴업 폐지 논의가 급부상하면서 규제 실효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휴식권에 대한 논의는 배제돼 있다. 일각에서는 ‘주 52시간제 정착’이나 ‘스케줄근무’를 이유로 10년 전과 달리 노동자의 휴식권이 크게 침해받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현실을 전혀 모르는 이야기”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김선경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 사무국장은 “캐셔들은 대부분 의무휴업일이 있어야만 주말에 쉴 수 있다”며 “토·일이 가장 바쁘기 때문에 주말에 연차를 쓰려고 해도 사다리타기나 제비뽑기를 하는 등 사원들 간 내부갈등도 심해진다”고 전했다.

“지자체 조례 개정 가능성 배제 못해”

이날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톱3’를 선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쉽게 관련 논의가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 범위에서 온라인 배송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쿠팡과 마켓컬리 같은 온라인 유통업체는 영업제한을 받지 않는 게 마트에 대한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민제안 투표에 의무휴업 폐지를 포함한 것 자체가 윤석열 정부의 정책기조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실의 입장을 곧 정책 추진 중단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물론 의무휴업 폐지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국회 통과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만 현행법(유통산업발전법 12조의2 3항)으로도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 지자체별로 다르긴 하지만 경기·경북 일부지역은 둘째·넷째 일요일이 아닌 수요일에 쉬고 있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이해당사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법에서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탓에 노동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2020년 9월 여수시는 추석명절을 맞아 의무휴업일을 둘째·넷째 일요일에서 추석·넷째 일요일로 한시적으로 변경한다고 고시했는데, 당시 노동자들과 별도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서울 강동구도 지난해 7월 이전까지만 해도 조례 시행규칙에서 명절 30일 전까지 전체 대규모 점포 등이 동의하면 의무휴업일을 변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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