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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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3년간 가해자뿐만 아니라 이를 묵인·방조한 회사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법원은 괴롭힘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방치한 사용자는 가해자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인정하거나 2차 가해를 방치하는 것 또한 2차 가해와 동일한 책임을 물었다. 사용자의 책임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3년간 직장내 괴롭힘 관련 판례 중 유의미한 18건을 분석한 ‘직장내 괴롭힘 판례 및 사례 보고서’를 31일 발표했다. 직장내 괴롭힘 등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 13건,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한 사용자에게 징역형을 내린 형사소송 1건, 가해자의 직장내 괴롭힘 관련 징계처분의 부당성 등을 다툰 행정소송 4건이 포함됐다.

사용자 손배 책임 여부,
업무관련성 유무에 따라 달라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내 괴롭힘을 방치한 사용자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보는 판결이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상급자에게서 수차례 강제추행을 당한 A씨에게 가해자에 대한 형사고소 취하를 권유한 B씨와 회사에 1천만원을 공동으로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B씨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한 것을 인정하고, 이를 방치한 사용자도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같은해 1월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경리직원 C씨가 2년간 회사 임원의 욕설과 무리한 업무지시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방치한 사용자에게 위자료 1천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용자가 직장내 괴롭힘을 직접 행했을 때뿐만 아니라, 직장내 괴롭힘을 예방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막지 못한 경우에도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 판시한 것이다.

물론 사용자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도 있다. 손해배상 책임 여부는 해당 사건이 업무관련성이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 있었다. 2020년 6월 서울중앙지법은 같은 회사의 직원에게서 “가만 안 둔다” “죽여 버린다” “X신아 꺼져라” 등 협박과 모욕을 받았다는 원고가 해당 직원에 대한 불법행위를 방조했다며 회사를 상대로 손배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모욕행위가 회사의 ‘사무집행에 관련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같은해 12월 수원지법 안양지원도 동료에게서 머리를 눈뭉치로 수차례 폭행당한 원고가 회사를 상대로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다하지 않았다며 위자료를 청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 폭행이 회사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동부 적극적 관리·감독 병행돼야”

직장내 괴롭힘 관련 사건에서 손해배상액이 높아진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손해배상 금액은 대체로 300만원 안팎이었는데, 최근 1천만원의 금액을 위자료로 인정한 판례가 나오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소연 변호사(직장갑질119)는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있고 형사처벌 판례도 나오는 등 법 개정 이후 개선 흐름이 뚜렷하다”며 “직장내 괴롭힘이 단순히 사람 사이 갈등이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불법행위고, 사용자는 이를 예방하고 조치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이 의미 있는 판결을 내리는 만큼 노동부도 적극적인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직장갑질119는 “일반 직장인들에게 소송은 큰 부담이기 때문에 노동부의 적극적인 조치의무 관리·감독은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또 다른 행위자를 용인하고, 또 다른 다수의 피해자를 방치하는 사용자가 계속 등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내 괴롭힘 조치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 기준 강화 △괴롭힘 판단에 대한 세부적인 가이드라인 마련 △사내 피해근로자 보호프로그램 운영 제언 △담당 근로감독관 감수성 강화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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