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2. 7. 14. 선고 2021구합63518 판결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지상파 방송사인 문화방송(MBC)이다. 참가인들은 2011년부터 원고 방송사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투데이>의 ‘이 시각 세계’ ‘아침신문보기’ 코너를 맡아 방송작가로 근무했다. 방송에 적합한 뉴스 아이템 선정, 선정된 아이템에 대한 원고 작성, 방송 모니터링이 참가인들의 주된 업무였다. 생방송의 특성상 참가인들은 새벽 3시30분~4시께 원고 방송사에 출근했고, 오전 7시~7시50분께 퇴근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참가인들은 회당 수수료를 지급받았다. 원고 방송사에는 참가인들의 고정석이 마련됐다. 참가인들은 원고 방송사로부터 뉴스 보도 프로그램, 외신 검색 사이트, 컴퓨터 및 비품 등을 제공받아 사용했다.

원고 방송사는 2020년 5월26일 참가인들에게 코너 개편을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참가인들은 같은해 6월26일 퇴사했다. 참가인들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으나 서울지노위는 참가인들이 근로자가 아니어서 당사자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구제신청을 각하했다. 참가인들은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노위는 2021년 3월19일 “참가인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이 사건 해지는 근로기준법 27조에 따른 해고의 서면통지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위법하다”는 이유로 초심판정을 취소하고 참가인들의 구제신청을 인용했다. 원고 방송사는 2021년 4월15일 서울행정법원에 중노위의 재심판정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2. 원고 방송사의 주장

방송작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참가인들은 독립적인 지위에서 재량을 가지고 원고작성 업무를 담당했다. 또한 참가인들과 민법상 위임계약을 체결했으며, 참가인들의 업무수행 과정에 구체적·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원고 방송사가 참가인들에게 일부 지시를 했으나 이는 ‘구속력 있는 사용자의 지휘·명령’이 아닌 ‘위임계약 목적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지시’였다. 참가인들이 일정한 시간·장소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원고 방송사의 비품을 사용한 것은 원고 방송사로부터 위임받은 업무의 특성에 기인한 것일 뿐이고 참가인들의 보수는 방송회차에 따라 결정되는 등 기본급·고정급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므로 근로의 대상적 성격으로 지급된 것이 아니다. 참가인들은 대학원에 재학하거나 다른 소득활동을 하는 등 원고 방송사에 전속적으로 근로를 제공하지 않았고, 원고 방송사의 취업규칙을 적용받지도 않았다. 참가인들은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납부했다. 이런 점에서 참가인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뤄진 재심판정은 위법하다.

3. 대상판결의 요지

1) 원고작성 업무나 방송 모니터링 업무는 다른 국내외 언론사가 작성한 신문기사를 요약·정리하는 것이거나 작성한 원고대로 방송이 이뤄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참가인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여지가 크지 않다. 뉴스 아이템을 선정하는 업무가 상대적으로 참가인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많이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할 것이나, 제품 조립 등 기계적·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도 일정한 재량을 가진다.

2) 참가인들이 수행한 업무는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정규직 근로자들과 함께 유기적으로 결합해 수행한 것으로서 그중 일부만을 따로 떼어 내 이를 독립된 사업자에게 위탁할 만한 성격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참가인들이 제작에 관여한 코너들은 그 내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큰 뉴스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여러 단계의 제작·협업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고, 단계마다 원고 방송사의 기획 의도에 맞도록 수정·보완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그 과정에서 원고 방송사의 개입·관여 정도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개입으로서 곧바로 참가인들의 업무를 구속했다고 봄이 상당하다.

3) 원고 방송사는 참가인들의 출·퇴근 시간을 일일이 관리·감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참가인들로서는 원고 방송사가 정한 방송 일정에 맞춰 방송사로 출근했다가 업무를 마쳐야만 퇴근할 수 있었으므로 원고 방송사가 참가인들의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정했다고 볼 수 있다.

4) 참가인들은 원고 방송사에 입사한 이후부터 퇴사할 때까지 약 9년 동안 계속해 원고 방송사에서 작가로 근무했고, 그 기간 동안 다른 방송사에서 작가로 근무하지 않았다. 근무 도중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거나 다른 업체의 업무를 수행하고 보수를 지급받은 것만으로는 근로 제공의 계속성·전속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5) 직무 능률이 떨어지거나, 직무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거나, 회사의 이익과 상반되는 이익을 취하거나, 회사에 불명예스러운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지 않는 한 직무 이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종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참가인들은 뉴스투데이 작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방송 종료 이후 시간에 단시간 근로를 제공하거나 출근을 요하지 않는 소득활동을 했으므로 근로자성 판단에 지장이 없다.

6)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으나, 참가인들이 담당한 코너의 방송 횟수는 매월 일정해 참가인들 또한 매월 고정된 보수를 지급받았다고 할 것이므로 이는 근로대상적 성격을 지닌다고 봄이 타당하다.

4. 대상판결의 검토 및 의미

대상판결은 2003년 서울고법의 방송작가 근로자성에 관한 판결을 뒤집고, 방송작가를 근로자로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2003년 당시 서울고법은 구성작가·리포터·MC·DJ는 방송사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하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방송사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즉 서울고법은 구성작가의 “업무 자체는 구성작가 자신의 책임하에 이뤄지는 창의적인 업무로서 정형화된 업무수행 방법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담당 PD 등이 구성작가의 업무수행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프로그램의 제작 일정에 맞춰 회사나 취재·촬영 장소 등에 수시로 출근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구성작가 스스로의 결정과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서 원고 방송사는 위 서울고법 판결을 참가인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기 위한 중요한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방송작가는 창의적인 일을 하고 그 특성상 재량이 많기 때문에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송작가도 여러 유형이 있다. 드라마 작가와 달리 뉴스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보도부문 작가는 사전에 정해진 방향과 형식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상판결은 일률적으로 방송작가는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점에서 벗어나 실제 방송작가가 담당하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재량 여지를 따졌다는 점에서 2003년 당시 판결보다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대상판결이 참가인들의 재량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기계적·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이상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도 업무상 재량이 있기 때문에 재량 여부만으로 근로자성을 달리 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도 눈에 띈다. 특별히 대상판결은 “예컨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이 명백한 회사의 사원도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분장과 관련해 어떤 아이템을 선정하고, 어떠한 내용으로 보고서를 작성할지 등에 관해 어느 정도 재량을 가진다”고 덧붙였는데,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노동 현장에서는 재량을 이유로 위임계약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 방송사는 참가인들이 업무상 재량을 가진 수임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임계약과 고용계약(근로계약)의 차이는 재량 여부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시에의 구속 여부라 할 것인 바, 대상판결은 위임계약과 고용계약(근로계약)의 차이를 잘 짚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대상판결은 참가인들이 수행한 업무는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정규직 근로자들과 함께 유기적으로 결합해 수행한 것으로서 그중 일부만을 따로 떼어 내 이를 독립된 사업자에게 위탁할 만한 성격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는데, 이는 최근 방송 종사자들의 근로자성을 다투는 사건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방송제작PD·FD·드라마 촬영감독·VJ·아나운서 등 방송 비정규직들이 방송사를 상대로 근로자성을 다툰 사안에서 대체로 법원은 위와 같은 특성을 근로자성 인정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대법원 2011. 3. 24. 선고 2010두10754판결, 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0다27671 판결, 대법원 2019. 10. 17. 선고 2019도9688 판결 등). 대상판결 역시 방송 비정규직에 관한 최근의 경향을 따르되, 한 발 더 나아가 방송사가 프로그램 제작의 주체로서 방송 의도와 책임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대상판결은 계속성·전속성에 관해서도 채권추심원에 관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8다292418 판결)을 따르되 이를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채권추심원의 전속성이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겸직으로 인해 업무수행 방식과 지휘·감독의 태양이나 정도 등이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종전과 달리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실질적으로 변경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면 근로자성 인정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상판결도 이를 따르면서, 원고 방송사에서의 직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상 겸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단시간 근로, 소위 투잡(Two job)이 확산하는 추세에서 현실을 반영한 적절한 판결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대상판결이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져 있는지 여부, 4대 보험 가입 여부, 사업소득세 납부 여부에 대해 방송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마음대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근로자성을 부정할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시한 점 역시도 방송 비정규직의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즉 방송사의 결정에 따라 회당 수수료 형태로 급여가 정해지고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으며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납부해야 하는 현실이다. 대상판결은 방송 제작 환경과 방송사의 역할에 주목하며 그간 노동법에서 배제돼 온 방송작가, 더 나아가 방송 비정규직에게 매우 고무적인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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