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가 우여곡절 끝에 합의하고 조업은 정상화했지만 다단계 하청구조 속 열악한 하청노동자 현실, 그로 인한 조선업 인력난 심화는 엉킨 실타래 그대로 남았다. 정부는 ‘법과 원칙’만 되뇔 뿐 해결책 마련에는 손을 놓았다.

“파업으로 터져 나온 울분”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울분은 뿌리가 깊다. 2014년 세계 조선산업 침체로 한국 조선업도 직격타를 맞았고, 7년 넘게 이어진 불황은 하청노동자 삶을 옥좼다. 2014년 13만명이 넘던 하청노동자 중 7만8천여명(올해 5월 기준)이 조선소에서 짐을 쌌고, 남은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렸다. 대우조선하청 노동자의 경우 매년 받던 상여금 550%가 삭감됐고, 하청업체 정규직이자 시급직 노동자는 최저시급에 가까운 임금을 받고 버텼다. 일당 높기로 소문난 파워공 월급도 2014년 23만~24만원에서 최근 17만원까지 줄었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달 22일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1세제곱미터 ‘철제감옥’ 농성에 들어선 이유다.

대우조선만의 일도 아니다. 지난해부터 노동자의 불만은 계속해서 표출됐다. 지난해 삼성중공업 파워공 수백명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작업거부 운동을 했고, 일당을 14만5천원에서 17만원으로 올렸다. 현대중공업 발판공들도 올해 초 시급 2천원과 일당 2만원을 인상하라고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모두 노조 지원 없이 현장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해 집단행동을 한 것이다. 그만큼 현장의 불만이 쌓였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런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4일 파업 43일 만에 정부 첫 공식입장을 냈는데 하청노동자 문제 언급 없이 “불법점거를 멈춰 달라”는 호소만 가득했다. 불법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한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인 만큼 농성장에 경찰력을 투입하겠다는 압박으로 읽혔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정부의 입장에는 하청노동자가 비판한 현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며 “나아질 희망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이 떠나가 인력난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 사무장은 “인력을 구하려면 결국 돈을 더 주는 수밖에 없는데 (이번 일은) 정부가 자충수를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해결 못한
조선업 다단계 하청구조”

하청노동자 설움은 저임금에서 그치지 않는다. 하청업체 ‘정규직’이라는데 폐업과 임금체불, 4대 보험 체납까지 생활은 불안정투성이다.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원청의 기성금 갑질 탓이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해 말 하청업체 ‘송림’과 ‘선호’가 폐업했고, 올해 3월에는 ‘대건’이 폐업했다. 지난 5월에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성화이엔지’ 노동자들이 사측의 임금체불에 항의해 일손을 놓고 원청을 찾아가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9월 하청업체 ‘진우기업’이 4대 보험료를 체납하고 폐업했고, ‘진형’은 지난달 31일 노동자 임금을 지불하지 않은 채 폐업했다.

하청업체 노사 모두 문제의 원인을 ‘낮은 기성금, 원청의 갑질’로 지목한다. 하도급 관계에서 일감을 나눠주는 원청에 바른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청업체 대건을 운영하다 3월 폐업한 대표 A씨가 5월2일이 돼서야 “(원청이) 협력사에 제대로 된 기성금을 줘야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고, 세금 내고 운영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된다”며 고공농성을 한 이유다.

조선업에서 원청의 하도급 갑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12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위반으로 현대중공업에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하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사내하도급업체에 하도급대금을 결정하지 않은 채 1천785건의 추가공사 작업을 위탁하고, 작업이 진행된 이후 사내하도급업체의 제조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도 2018년과 2020년 기성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하도급법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에서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조선업 구조적 병폐 해결엔 손 놓아”

조선업 인력난은 이런 구조적 문제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올해 9월 지난해 대비 9천509명의 인력이, 내년 6월에는 이보다 많은 1만1천99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조선업의 구조적 병폐를 해결하기보다 외국인 노동자 확대로 조선업 인력난을 해결하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지난 4월 정부는 특정활동(E-7) 비자로 들어올 수 있는 조선업 도장공·용접공 인원 제한을 없앴다. 업체당 외국인 노동자 비율은 20%를 넘길 수 없다는 제약을 두긴 했지만,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5일 조선 3사를 포함한 조선업계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진행한 ‘조선업 인력 현안 간담회’에서 E-7, E-9(단순노무인력) 등 비자제도 개선을 통한 외국인력 도입 활성화 방안,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제도개선 등을 요구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조선업은 사내하청에 생산을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하청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는 상황에서 얼마나 (산업이) 지속할 수 있을지 꾸준히 문제가 지적돼 왔다”며 “이번에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기업에) ‘좀 더 이렇게 해도 되겠네’라는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조선업은 세계 1위이기도 하고,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양질의 고용구조를 갖추고 기업도 경쟁력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하는데 중장기적 시각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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