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보건공단
▲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반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재계의 ‘위헌’ 주장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살인법(2007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 있는 영국은 어떨까.

2022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 행사가 열리는 경기도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5일 오전 ‘중대재해처벌법 안착 지원을 위한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영국에서 빅토리아 로퍼 노섬브리아대 로스쿨 조교수가, 우리나라는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싱가포르에서는 국제근로감독관협회 회장인 호시옹힌 전 인력부 직장안전보건국장이 참석했다.

로퍼 조교수는 “2006년만 해도 근무 중 247명이 사망했는데 노동자 10만명당 0.84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라며 “보살핌(안전보건관리책임)의 의무를 가진 조직에서 중대한 위반이 발생했을 때 경영책임자의 경영관리가 법위반의 실질적 요소가 돼 고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상한이 없는 벌금을 내리도록 기업살인법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개인이 아닌 기업을 처벌 대상으로 한다. 벌금 산정은 기업의 매출에 따라 결정된다. 벌금형은 점점 무거워지는 추세다. 지난해 판결을 받은 3건 모두 벌금이 100만파운드(약 15억8천만원)를 넘었고, 그중 2건은 200만파운드 벌금형이 내려졌다.

로퍼 조교수는 “기업살인법은 기업의 부주의한 안전보건 관행에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해 사망률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에서 지난해 근무 중 사망한 사람은 142명으로, 사망10만인율은 0.4명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828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사망10만인율은 영국보다 10배 높은 4.3명이다.

법 시행 이후 14년 동안 33건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현재 조사 중인 그렌펠타워 화재사건(사망자 72명)을 제외하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재해는 드물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했을 때보다 기소와 유죄 판결 건수가 증가하고 유죄 선고율도 증가하는 추세인데 로퍼 교수에 따르면 피고인 3명 중 2명은 유죄를 인정했다.

그런데 피고인 대부분은 1인 기업을 포함한 영세기업이거나 소기업이다. 중견기업을 제외하면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사업장은 한 곳 정도에 불과하다. 로퍼 조교수는 “검찰의 관련 예산 삭감과 기업살인 범죄에 대한 수사 숙련도가 낮은 문제, 산업안전보건법 기소가 더 쉬운 환경 등이 법 집행의 어려운 점”이라며 “특히 사망사고와 고위 경영진의 연계성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은 어느 정도 안전보건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법률대리인을 통한 법률적 방어에도 주력하기 때문에 기업살인법의 처벌이 그렇지 못한 영세기업에 쏠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배계완 부산가톨릭대 교수(안전보건학)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한국에서 기업들이 로펌을 찾아 법률 대응 컨설팅에 집중하면서 현장은 실제로 안전하지 않은데 서류만 늘어나는 안전관료주의가 우려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형배 교수도 “기업이 클수록 사장이 기소되지 않을 확률, 즉 빅 컴퍼니 보스 이그젬션(Big Company boss Exemption) 가능성이 크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은 ‘빅 컴퍼니 보스’도 처벌하기 위해 만든 법인데 정치적 협상 과정에서 ‘보스’ 말고 ‘CSO(최고안전책임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열어 놨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 교수는 “그렇다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실패한 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그동안 중간관리자에 맡겨 놓았던 안전보건을 위해 ‘보스’가 법률컨설팅을 받고 있는데 지금은 면책을 위한 컨설팅이겠지만 앞으로 10년 후에는 산재예방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호시옹힌 회장은 “싱가포르에서는 2004~2021년 사이 산재사망률(사망10만인율)이 77% 감소해 지난해 1.1명을 기록했다”며 “기업의 임원과 CEO, 관리자에게 엄격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직장안전보건법은 특히 재범을 가중처벌한다. 최대 벌금이 개인의 경우 초범은 20만싱가포르달러(약 1억9천만원)지만 재범은 40만싱가포르달러다. 최대 2년의 징역형 처벌도 가능하다. 법인의 경우 형사처벌은 하지 않고 초범은 50만싱가포르달러, 재범은 100만싱가포르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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