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진수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세종호텔은 10년 전만 해도 서울 시내 4성급 호텔 중에서도 정규직 비율이 높아서 일하고 싶은 호텔이었다. 그러나 10년 만에 정규직 250명이 일하던 일터는 정규직 23명과 16명의 하청노동자만 남은 호텔이 됐다.

2011년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새롭게 생긴 노조는 대표교섭권을 가지고 친사측 행보를 하며 노동조건을 악화시켜 왔다. 연봉제 실시와 포괄임금제 적용, 탄력근로제 합의, 부서 외주화 확대까지 우리 노조의 반대와 소속 조합원들의 반대여론도 무시하고 밀실합의를 자행했다. 그 결과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진행됐고 정규직이 나간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부서가 외주화 돼 갔다. 10년 동안 200명을 구조조정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113억원 규모의 회계부정으로 대양학원 재단 이사장에서 해임됐던 주명건이 세종호텔 회장으로 복귀하면서부터 벌어진 일이다.

세종호텔은 세종대를 운영하는 대양학원이 100% 지분을 소유한 수익사업체이고 자산도 2천억원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 고용형태를 하청구조로 바꾸려고 애써 온 사측에게 코로나19는 어쩌면 기회가 돼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종호텔은 고용유지지원금을 추가 신청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정부는 기업의 고용유지 의무를 더 강하게 부여해야 했는데도 방관했다. 세종호텔은 정부 정책의 허점을 이용해 정리해고를 추진했다.

반복하는 희망퇴직 압박 속에서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을 위해 우리 지부를 선택했다. 지부는 8년 만에 교섭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교섭을 진행하던 중에 15명이 정리해고 당했다. 모두 지부 조합원들이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 노력,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과 대상 선정, 과반수 노조와의 성실한 협의 등 정리해고 요건 어느 하나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다. 그러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3월 자본의 입장만 대변하고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몇 달 사이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명동을 비롯한 서울 도심은 하루가 다르게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뷔페와 웨딩 영업을 하는 사업장은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이다. 호텔들이 정상영업을 준비하며 조식과 뷔페를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세종호텔만 식음사업장 폐지를 고집하고, 조식 제공이 안 돼서 단체관광객 유치도 못하고 있다. 330개의 객실 중 대부분을 비워둔 채 저단가의 장기투숙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세종호텔은 영업을 정상화하려면 식음사업장을 재개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해고노동자들을 복직시켜야 할 명분을 주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일까. ‘설사 호텔이 망하더라도 해고노동자들은 복직시킬 수 없다’ ‘세종호텔에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이 상황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세종호텔의 정리해고가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정규직 없는 비정규직 호텔을 만들기 위한 부당해고이자 부당노동행위라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까.

27일은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해고된 지 200일이 되는 날이었다. 다음달 4일 중앙노동위원회 심문기일이 예정돼 있다. 중노위는 과연 어떤 판정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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